2021년 9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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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믿음은 주님 사랑 향해 힘차게 올라가는 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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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나태주, 풀꽃)

예수 성심 성월 마지막 주일에 예수님 마음을 더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고, 느끼길 바라며 말씀 묵상을 시작합니다. 벌써 2021년 절반이 지났는데 남은 반년은 말씀을 경청하면서 희미해진 올해 목표를 되새기고, 그리스도인 제자의 길을 충실히 갈 수 있기를, 신적이면서 인간적인 예수님의 사랑, 그분에 대한 ‘믿음’이 마음 안에서 서서히 성장하기를 청합니다.


■ 복음의 맥락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마르 1,1)

기원후 60년대 중반 마르코의 청중은 부활한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부인하고 살아남을 것인가, 콜로세움에서 사자에게 먹혀 죽을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마르코복음서의 전체적인 요점은 마르코의 청중에게 고통과 죽음은 생명으로 이끈다는 확신을 갖게 하려는 것입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을 만나 생명을 찾게 된 두 여자가 등장합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여성들은 항상 예수님의 정체를 이해하는데 굼뜬 제자들에게 믿음(5,34), 통찰(7,29),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알고 준비하는 신심(14,3-9), 십자가 밑을 지키는 충실함(15,40-41)의 모델로 등장합니다.


■ 여성과 예수님의 만남

오늘 복음에 나오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 이야기와 하혈하는 부인 이야기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느님 자비의 은혜를 받는 두 사람 모두 여성입니다. 또 두 사람은 열둘이라는 숫자로 결합됩니다. 한 사람은 율법에서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병으로 인해, 한 사람은 죽음으로 인해 사람들에게서 소외되고 고립된 처지입니다.

두 이야기를 연결하는 것은 ‘믿다’, ‘구원하다’, ‘만지다’라는 동사인데 예수님과의 친교는 우리의 치명적인 질병과 죽음을 물리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두 이야기 중에 하혈병에 걸린 여인과 예수님의 만남에 집중합니다. 예수님은 하혈병으로 고통받는 부인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라고 말합니다.

12년이나 병을 앓았다면 그 부인이 예수님보다 나이가 많을지도 모르는데, 그 성인에게 ‘딸’이라고 부르는 것이 깊은 감동을 줍니다. 그 부인은 사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 ‘딸’입니다. 예수님이 그녀를 치유해 새롭게 태어나게 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두 번 태어납니다. 부모에게서 태어났을 때, 그리고 자신의 소명을 깨달았을 때입니다. 이제 치유된 여성은 공동체 안에서 정말 하느님 모상을 보여주는 하느님 딸로서 자신의 소명을 살아갈 것입니다.

‘하느님 딸’은 자기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본질적 칭호이자 우여곡절을 겪는 인생 안에서 일관성 있게 살아내야 할 소명이기도 합니다.

하혈병에 걸린 부인은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를 창조하고 사랑하는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알고는 있는데 그분께 다가가지도 않고 청하지도 않습니다.

자녀가 아니라 이방인으로, 하느님 집을 향한 순례자가 아니라 구경꾼으로 살아가는데 만족합니다. 온갖 보화가 가득 찬 선물 바구니를 들고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는데 외면하는 자녀와 같은 우리에게 하혈병이 걸린 부인은 참 믿음이 무엇인지 가르칩니다.

믿음이란 예수님에 대해 말을 하는 것만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갈망하는 것, 다가가는 것, 용기를 무릅쓰는 것, 손을 뻗는 것, 대화하는 것, 청하는 것입니다. “저의 아버지, 지금 저를 도와주세요. 저는 이런 저런 고질병에서 해방되기를, 저의 원래 모습인 하느님 딸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모든 구원의 첫 단계는 ‘원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모두 ‘원한다’ 또는 ‘원하지 않는다’라는 단어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매일 의도적으로 이 단어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할 것입니다. ‘나는 오늘 무엇을 원하는가? 내가 오늘 원하는 것은 나의 구원을 위한 것인가?’

‘구원’이라는 말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여인의 건강을 회복시킵니다. 그리고 사회적, 종교적 차별에서 여인을 해방시킵니다. 나아가 여인의 두려움, 낙담, 좌절을 무력화하고 그녀의 마음에 새겨진 희망을 깨닫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그녀가 몰래 숨어서 행동하지 않아도 되도록 그녀를 공동체로 돌아가게 합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자녀들의 믿음을 양육하고 성장시키고 각자의 소명을 잘 완성하도록 가르치는 ‘하느님의 집’입니다.

“진정한 치유는 손상된 것을 고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최선의 역량을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미국 심리학자, 윌리엄 허버트 셀던)


■ 믿음과 덕의 사다리

종종 사람들은 “믿음으로 무엇을 할 수 있나요?”라고 질문합니다. 믿음이 실제로 생계 문제를 해결하거나 공동체와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시각이 그 안에 담겨있습니다.

믿음은 선물이지만 계속 물을 주고 길러야 할 화초 같습니다. 평소에 물을 주지 않은 믿음은 시련의 기근이 올 때 말라버리기 쉽습니다. 초세기말 베드로 후서의 저자는 하느님 본향을 향해 이 세상에서 순례 중인 신자들에게 믿음은 온갖 덕의 으뜸인 ‘사랑’에 도달하는 사다리의 출발점이라고 가르칩니다.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앎을 더하며, 앎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신심을, 신심에 형제애를, 형제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2베드 1,5-7)

예수 성심 성월, 하느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열기로 우리의 지친 마음이 힘을 얻기를 원합니다. 삶의 목표가 분명해지기를, 덕의 사다리를 충실하게 올라가기를, 그래서 6월 햇볕의 열기로 달콤하게 무르익어가는 블루베리 열매처럼 삶 안에서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회당장의 딸에게 한 말씀으로 매일 우리를 깨웁니다. “탈리타 쿰!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매일 예수님 말씀을 듣기 위해 시간과 공간을 내어놓는 사람은 복잡한 일상 안에서도 평화를 맛볼 것이고, 눈을 뜨고 걸으면서 정말 살 것입니다. 아멘!





임숙희(레지나) 엔아르케성경삶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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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6-22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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