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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셔벗 성혈

이정철 신부 (수원교구 단내성가정성지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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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여 나를 보내주소서. 당신 손길 필요한 곳에…."

 3년 전 성가 `내 발을 씻기신 예수`를 부르며 단내성가정성지에 부임했다. 성지 사목을 원했던 나는 의욕이 넘쳤다. 성지에 숨어 살며 신앙을 지켰던 순교자들 마음을 체험을 통해 느껴보고 싶었다.

 `순교 체험도 하고 새해맞이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새해 첫 미사이자 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미사를 성지 뒷산(와룡산) 정상에 있는 예수 성심상 앞에서 봉헌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혹한기 훈련과도 같은 1박 2일 캠핑이 시작됐다.

 순교자 가족이 이곳에 숨어들었을 때가 한겨울이었기 때문에 순교체험에 잘 맞아떨어지는 계획이었다. 성지위원장님을 비롯해 나와 마음을 같이한 몇몇 신자들과 함께 와룡산 정상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갑작스레 결정된 사항이기에 성지 근처 마을의 신자들에게만 와룡산 정상 대축일 미사를 알렸다.

 오후 4시, 텐트와 캠핑 장비를 짊어지고 산에 올랐다. 일기예보에서는 가장 추운 날이 될 거라고 했다. 영하 19℃였다. 산 정상은 더 추웠다. 저녁 식사로 준비한 삼겹살을 접시로 옮겨 놓은 지 1분도 안 돼 살얼음이 얼었다.

 자정(새해)이 되자 멀리 보이는 스키장에서 폭죽을 터트렸다. 와룡산 정상에 있는 우리도 환호를 질렀다. 잠을 청하려고 텐트에 들어왔더니 이글루처럼 하얗게 눈꽃이 피어 있다. 새벽이 되자 기온은 더 떨어졌다. 우리는 "내일까지 얼어 죽지 않으면 미사를 드리자"고 우스갯소리를 하며 잠을 청했다.

 마침내 새벽 6시가 됐다. 밖은 아직도 캄캄했다. 텐트 밖으로 신자들이 기어 나왔다. 마을 신자들도 하나 둘 예수성심상 앞으로 올라왔다. 신자 50여 명이 새해 첫 미사를 드리기 위해 예수성심상 앞에 모였다. 한껏 멋을 내고 온 한 학생은 미사 내내 발을 동동 굴렀다. 양말 세 켤레를 신고 발바닥에 핫팩까지 붙인 우리도 발이 얼 것 같은데 멋을 내느라 옷을 얇게 입은 그 학생은 얼마나 추울지 짐작이 됐다.

 성찬 전례 시간. 포도주와 물을 섞으려고 성작에 포도주를 붓는 순간 그대로 얼어버렸다. 포도주가 얼 만큼 추운 날씨였다. 성작을 들어 올릴 때는 손이 성작에 달라붙는 것 같았다.

 양형영성체를 하려고 성체를 성혈에 찍는데 성혈이 성체에 적셔지지 않고 마치 셔벗(과즙에 물, 설탕 등을 섞어 얼린 얼음과자)처럼 떠지는 것이었다. 결국 양형영성체는 셔벗이 된 성혈을 성체로 떠서 해야 했다. `셔벗 성혈`의 추억을 간직한 우리는 그 후 매년 1월 1일 와룡산 정상에서 해맞이 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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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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