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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교육과 공동체가 세상을 바꾼다

이정철 신부 (수원교구 단내성가정성지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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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수도회 창설할 생각 없니?"

 "새로운 카리스마가 더는 나올 게 없지 않나?"

 "카리스마는 시대에 맞게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지."

 그 친구는 왜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던졌을까? 2년 전 오랜 만에 동기 신부를 만나 저녁을 먹으며 했던 얘기다. 어쨌거나 그 대화는 그저 지나가는 얘기가 되는 듯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EBS에서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세운 파티바바 학교가 나왔다. 내 시선을 잡아끄는 부분이 있었다.

 "너희는 여기서 무엇을 배우니?"

 "우리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요."

 학생들의 대답을 듣고 내 머릿속은 섬광이 비치는 듯 번쩍였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어떨까? 성지순례를 온 부모들에게 "아이들이 행복할까요?"하고 물어보면 "네"하고 대답한다. 그러면 그 옆에 있는 아이들이 "아니오!"하고 소리친다. 행복이 사라진 교육 때문이다.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건 행복 교육이 아닐까 한다. 혹시 이것이 이 시대에 주는 카리스마인가?

 공교육을 보완하기 위해 대안학교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대안학교를 다닌 학생과 공교육을 받은 학생은 확실히 차이가 있다. 대안학교를 다닌 학생은 일단 행복도가 높다. 그러나 사회 적응력은 공교육을 받은 학생이 낫다.

 경쟁하지 않는 교육을 받은 대안학교 학생보다 경쟁하며 공부해온 학생이 경쟁사회에 더 잘 적응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것이 대안학교가 넘어야 할 숙제다. 상생교육을 하지만 아이들은 결국 경쟁사회로 나가야 하는 미래를 가진 것이다. 즉 대안학교의 비전은 하나인 셈이다.

 하지만 또 다른 비전이 있다면 어떨까? 경쟁하지 않는 삶, 원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 가치에 우선을 두는 삶. 그러한 비전을 새로운 수도회가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학생은 졸업할 때 세 가지 비전을 갖게 된다.

 첫째는 수도자의 삶이다. 수도자에게 배운 학생이 수도자가 돼 다시 학생을 가르치게 되는 구조다. 물론 적성에 맞는 다른 일을 하는 수도자가 될 수도 있다. 수도자로서 사는 것은 신앙에 가장 큰 가치를 두는 삶이다. 두 번째는 결혼하고 수도자와 함께 하나의 공동체를 이뤄 원하는 일을 하는 삶이다. 이는 행복에 가치를 두는 삶이다. 세 번째는 기존의 삶처럼 성공을 향해 경쟁하는 삶이다.

 너무 이상적인가? 어찌 보면 이는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카리스마다. 나는 하느님 나라가 현실로 이뤄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이유일 것이다. 신념을 지닌 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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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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