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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첫 경험들

황영화 신부(안동교구 춘양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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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때 일이다. 1년 중 가장 큰 축일이기에 준비할 것이 많은 때에 수녀님도 사무원도 안 계시니 신경 쓸 것이 많다. 그렇지만 다행히 제대회 자매님들 덕분에 수월하게 보냈다. 바쁜 대축일이 끝나면 모두 엠마우스를 떠나는데, 이곳에 와서는 가본 적이 없다. 공소였기에 그런 게 무엇인지도 모를뿐더러, 농사일에 바쁜 때이니 괜히 부담을 줄까 해서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떠나기로 했다. 수고하신 분들에게 뭐라도 표현해야 한다는 그럴싸한 합리화와 함께, 단조로운 일상을 벗어나고 싶었고, 예수님 찾아 떠나는 행렬에서 소외된 기분을 떨쳐버리고 싶기도 했다. 전례부장님이 운전을 해주시기로 했다.

 나는 운전석 옆자리에 앉으니 불편할 것이 없는데, 뒤에 두 분은 괜찮아하지만 자리가 불편해 안쓰러워 보였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을 달려 바닷가에 도착했다. 상쾌한 바닷바람이 자연산 회보다 맛있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바람과 함께 날려 보내는 시간이었다. 성당 건축에 대한 걱정도 함께 날려 보내며 그분께서 세워주시리라는 믿음에 다가설 수 있었던 좋은 시간. 우리는 그렇게 1톤 트럭을 타고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엠마우스를 다녀왔다.

 우리 본당은 구역이 다섯 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반이 몇 개씩 속해 있는 그런 구역이 아니라, 제일 작은 소공동체 단위가 구역이고, 다섯 개가 전부이다. 한 구역 면적은 도시 본당 몇 개의 아파트촌이 들어설 수 있을 만큼 넓지만 대부분이 농지와 산지이다.

 지난겨울 구역미사가 있던 날, 전날 내린 눈 때문에 차가 들어오지 못하는데 `신부님 오실 수 있느냐`고 구역장님이 전화하셨다. 겨울이면 농한기라 미사를 오전에 드리고 같이 점심을 나눠 먹기 때문에 전날부터 열심히 음식을 준비했는데 어쩌느냐는 것이다. 음식도 그러려니와, 구역모임 하는 안나 자매님네는 세례받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마음고생이 많은 중이라 거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망설임 없이 등산화를 꺼내 신고, 미사 도구와 제의를 챙겨 배낭에 넣고 출발했다.

 일단 차가 갈 수 있는 곳까지 가서 주차하고, 찬바람 맞으며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걷고 뛰고를 반복했다. 언덕을 넘어 저 멀리 굴뚝에 연기 나는 집이 보였다. 겨우겨우 걸음을 떼는 마리아 할머니와 아녜스 할머니도 미끄러운 길을 걸어서 와 계셨다. 마중 나와 반겨 주셨고,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젊은 신부에게는 그리 큰 무리도 아닌데 오늘의 이야깃거리는 단연 `구역미사를 위해 등산 가방을 메고 눈길을 걸어온 신부`였다. 하지만 미끄러운 눈길을 마다치 않고 오신 할머니들에게 더 큰 감사를 드린다. 온통 하얀 은총 속에서 우리만의 미사를 드리고 잔치 음식을 맛나게 나눠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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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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