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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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125. 성체성사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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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신자가 “신부님, 제가 미사예물을 냈는데 신부님이 ‘미사 지향’을 읽어주지 않으세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때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요즘 생각해보니 ‘미사 지향?’이라는 의문이 듭니다. 아니 왜 미사 지향이 연옥 영혼이나 살아 있는 이들의 복을 비는 것이어야 할까요? 우리는 미사 때 진정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지향해야 할까요?

사제는 분명 성혈이 든 잔을 들고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반복합니다. 미사는 주님을 기억하고 그분을 모시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지 그분이 주실 선물을 지향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미사예물을 바치며 자칫 미사의 참된 지향을 잊어가는 것은 아닌지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미사의 참된 지향은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아버지께 당신을 봉헌하여 아버지와 하나가 된 십자가 제사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을 제단에 봉헌하여 성체와 성혈처럼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미사 중에 다른 지향을 지나치게 기억하며 미사의 본질을 흩뜨려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기억하여 성찬례를 행하라고 하신 것은 단지 “예수님과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을 기억하라는 요구만은 아닐 것입니다.”(1341) 우리는 성작을 들고 사제가 반복하는 말씀 전체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게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너희와 많은 이의 ‘죄사함’을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그리스도를 기억함은 그분께서 우리와 맺은 ‘계약’과 ‘죄사함’을 위해 피를 흘리셨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사함’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셨다는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요셉 성인은 성모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고 돌아왔을 때 잉태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이는 자신이 약혼자를 임신시켜놓고 싫어져서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은 세상에서 비난받겠지만 요셉의 아기를 잉태한 줄로 사람들이 믿게 되기 때문에 성모 마리아는 돌을 맞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이를 ‘의로움’이라고 합니다. 의로움은 어떻게 생길까요? 내가 먼저 거저 죄를 용서받았으니 나도 당연히 타인의 죄를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할 때 생겨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사함을 위해 피를 흘리셨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가장 큰 의도가 이것입니다.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벌거벗고 누워있을 때 아들 함은 아버지를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셈과 야펫은 아버지의 벗은 모습을 보지 않고 뒤로 들어와 겉옷을 덮어드렸습니다. 함은 저주를 받습니다. 그가 구원받은 것은 오랜 시간 자기 아버지가 방주를 만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자신을 살려준 것은 기억하지 않고 아버지를 비판한다는 것은 의롭지 못한 행동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누구도 심판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은 문설주에 피가 발려져 그 집의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돌아가신 “파스카 양”(1339)이십니다. 어린 양의 피가 발라져 용서받고 구원된 집이 심판자가 되어 다른 집을 심판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슨 ‘계약’을 또 기억해야 할까요? 모든 ‘관계’는 계약입니다. 쌍방의 의무를 수행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아담은 에덴동산 전부를 받았지만, 선악과나무 하나조차도 바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을 몽땅 써버리고 자식은 굶기는 아내를 어떤 남편이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새 아담인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빼낸 피와 물로 창조된 새 하와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생명의 피로 또 다른 생명을 탄생시키고 하느님 자녀로 키워야 하는 의무를 지닙니다. 이 ‘계약’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사 끝날 때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는 사제의 말에 “아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미사에 참례하는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파스카 신비”를 기억하며 “십자가의 좁은 길을 걸어갑니다.”(1344)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1338)입니다.



전삼용 신부 (수원교구 죽산성지 전담 겸 영성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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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6-22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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