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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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대림 제1주일 - 기쁨과 희망으로 주님의 시간을 기다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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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탄하고 기뻐하고 감사드려야 할 대림시기

유달리 힘겹고 답답했던 한 해가 저물고 우리는 또 다시 대림 시기의 출발점에 서 있습니다. 저녁 식탁에서 한 형제가 이제 대림 시기를 시작하는데, 공동체 차원에서 뭔가 절제하고 보속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하지 않느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갑자기 다들 알쏭달쏭해졌습니다. “뭐지? 대림 시기에도 그랬었나? 아닌 것 같은데, 맞나?”
물론 교회 역사 안에 그런 흔적이 있었습니다. 중세기 교회 때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대림 시기에 사순 시기 못지않게 속죄와 단식, 금육과 고행을 실천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단죄와 심판을 위한 날이 될 것이라 믿었기에, 대림 시기 참회와 속죄가 강조됐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분위기가 살짝 바뀌었습니다. 대림 시기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동시에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기쁨의 시기입니다. 어찌 보면 대림 시기는 한 달 동안 지속되는 단기 영성 학교입니다. 이 기간 동안 교회는 신자들에게 희망에 찬 기다림의 자세를 가르쳐 줍니다.

물론 대림 시기 육화강생의 신비와 구세주 하느님의 지극한 겸손에 깊이 감사하며, 걸맞은 성찰과 준비도 필요합니다. 대림 시기의 성경 말씀을 통해 지속적으로 강조될 회개와 보속에로의 초대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대림 시기에 더 강조돼야 할 측면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너무 사랑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강생하신 놀라운 사건 앞에 경탄하고 기뻐하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아기 예수님의 성탄이라는 은혜로운 대축제를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는 시기가 곧 대림 시기인 것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기다릴 것입니까?

또한 대림 시기는 말마디 그대로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관건은 ‘무엇을 기다릴 것인가?’ ‘어떻게 기다릴 것인가?’입니다. 대림 시기를 시작하면서 한번 묵상해봤습니다. 가장 간절하게, 또 절박하게 누군가를, 또는 무엇인가를 기다렸던 때는 언제였던가?

잠시 동안 유학 생활을 할 때의 기억도 끔찍합니다. 외국어, 그까짓 것, 일단 나가면 적당히 되겠지 생각했었는데, 생각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어학연수 시절 하늘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만 봐도 ‘저게 KAL기인가, 저거 타고 그만 돌아가 버릴까’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열두 번이었습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얼마나 팍팍하던지, 빨리 논문 끝내고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꽤 오래전 갑작스런 발병으로 한밤중에 응급실 신세를 진 적이 있었습니다. 시시각각으로 조여 오는 죽음의 공포에 떨며 혼미한 가운데서도 뭔가 신속한 조치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런 제 간절한 기대와는 달리 전혀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듯한 새파란 ‘왕초보’ 의사들만 번갈아 가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제대로 된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아침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저는 점점 증폭되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발 빨리 아침이 와라. 제대로 진료할 수 있는 의사 선생님, 제발 빨리 출근 좀 하세요!’

또다시 도래한 이 은총의 대림 시기, 우리가 지닌 ‘기다림’의 질은 어떻습니까? 강도나 수준은 어떻습니까? 이 대림 시기, 우리는 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보다 열렬히, 보다 순도 높게 주님을 기다릴 일입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그저 하릴없이 시간만 죽이는 일이 절대 아니겠지요. 기다린다는 것, 무료하게 시간을 때우는 것이 결코 아닐 것입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간절히 기도한다는 것, 최선을 다해 주님의 뜻을 찾는다는 것,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운다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나 자신 안에 있는 깊은 내면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 중지되었던 주님과의 영적 여정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하겠습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자기중심적 삶을 탈피한다는 것, 내 지난 삶에 대한 대대적인 성찰과 쇄신작업을 시작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대림 시기, 우리도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지만, 주님께서는 더 간절히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해 아주 구체적인 행동강령을 지침으로 내려주셨습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마르 13,35)

하느님의 때를 기다립시다!

오랜 세월 ‘빨리 빨리!’ 문화에 젖어 살다 보니 너그러움, 여유, 유유자적, 은근함, 결국 기다림의 영성, 기다림의 미학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 안에서도 기다림이 부족합니다. 어떤 지향을 두고 열렬히 간구하고 또 실제적인 삶 안에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면 이제 여유를 갖고 하느님의 때, 하느님의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빠름’을 원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바름’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말입니다. “인간에게 큰 죄가 두 가지 있는데 다른 죄들도 모두 여기에서 나옵니다. 조급함과 게으름이 그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때 정말 한 3분만 참았더라면!’ 하는 교도소 수감자들을 제가 한둘 만난 게 아닙니다. 이미 깨져버린 사랑,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인연들의 원인을 추적해보면 결국 기다릴 줄 모르는 조급함이었습니다.

대림 시기 첫날, 우리의 기다림이 어떠해야 할까, 고민해 봅니다. 평생을 기다려왔던 주님을 뵙는 기쁨과 설렘, 그리움과 기대로 가득 찬 희망의 기다림이어야 하겠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기다림은 내 중심이 아니라 주님 중심의 너그러운 기다림이어야 하겠습니다. 결국 내 의지가 관철되기를 기대하는 기다림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성취되기를 고대하는 영적인 기다림이어야 하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살레시오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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