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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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대림 제4주일 -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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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하시는 일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 걸려 있는 ‘주님 탄생 예고’는 복자 프라 안젤리코의 대표작이면서, 오늘 복음의 주제를 그린 그림 중에 가장 유명한 작품일 것입니다. 화가는 화면을 셋으로 나눠서 좌측에 하느님 손길로부터 빛이 나오는 장면을, 가운데 부분에 그 빛과 함께 내려오는 비둘기 모양의 성령과 천사 가브리엘을, 오른쪽 면에 하느님의 빛이 마침내 마리아에게 도달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화면의 세밀함과 아름다운 색채, 깊은 신학적 의미는 저절로 감탄을 자아냅니다.

프라 안젤리코에게 그림은 곧 기도였고, 하느님 말씀을 회화로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귀도 디 피에트로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그는 도미니코회에 입회한 후에 조반니 수사(프라 조반니, ‘프라’는 탁발 수도승을 뜻합니다)라는 수도명을 받았습니다. 탁월한 예술적 재능으로 ‘천사 같은 수도자’(Fra Angelico)라는 호칭까지 얻었지만, 그는 세상이 주는 허명에 도취되지 않았습니다. 프라 안젤리코는 자신이 직접 지은 묘비명에 이런 고백을 남깁니다. “저를 칭찬하시려거든, 고대 최고의 화가였던 아펠레스 같은 재능을 가졌던 사람이라는 식으로 말씀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보다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바친 사람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이 세상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일이라 해서 하늘에서도 중요한 일은 아닙니다.”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돌리는 수도자다운 모습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루신다’는 이 겸손한 고백이 오늘 듣는 하느님의 말씀들을 관통합니다.



힘을 북돋아 주시는 하느님

첫째 독서의 다윗은 양치기 목동에서 한 나라의 군주에 이른 입지전적 인물입니다. 자신의 성공에 한껏 고무되어 이렇게 말합니다. “보시오, 나는 향백나무 궁에 사는데, 하느님의 궤는 천막에 머무르고 있소.”(2사무 7,2) 짐짓 하느님을 위하는 말 같지만, 거기에는 자신이 마치 집 한 채 없는 하느님께 뭐라도 해드릴 수 있는 사람인 듯 우쭐거리는 교만이 숨겨져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일분일초도 숨 쉬고 살 수 없는 인간의 본질을 망각하고, 그동안 거둔 놀라운 성공과 성취가 온전히 자신의 능력 때문인 양 여기는 모습입니다. 그런 다윗에게 하느님께서는 나탄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2사무 7,5)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거대한 신전들과 사원들을 눈으로 본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웅장하게 건축된 온갖 신전들과 신상들, 화려한 제의에 현혹되지 않고 하느님의 궤를 모신 초라한 천막을 따라 광야의 여정을 걸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과 엄위하심은 사람의 손으로 빚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하느님 백성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거대한 신전과 신상을 세우는 대신, 하느님 말씀을 중심으로 모이고 말씀을 따라 사는 데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았습니다.

“영원토록 네 후손을 굳건히 하고, 대대로 이어 갈 네 왕좌를 세우노라”(화답송)고 약속하신 하느님, “여러분의 힘을 북돋아 주실 능력이 있는”(제2독서; 로마 16,25) 하느님께 의지하는 것이 신앙의 본분입니다. 다윗은 바로 이 점을 잊고 있었고, 너무 커져 버린 자기 그림자 때문에 하느님과 인간의 진실을 볼 눈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성탄 미사를 코앞에 두고 읽는 복음은 큰일을 이루시는 하느님과, 그분께 협력하는 겸손한 인간 마리아가 함께 빚어내는 아름다운 협주곡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성자께서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셨다는 성경의 증언을 황당한 신화쯤으로 여깁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 구절이 뜻하는 바를 알아듣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태도이기도 합니다.

상식적으로, 변방 중에서도 변방인 갈릴래아 나자렛의 한 처녀에게 일어난 일을 그 한 마디 한 마디까지 기록해 놓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복음서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 기록되었지요. 예수님의 제자들과 그 제자들이 중심이 된 신앙 공동체가 예수님에 대해 회상하면서, 그들이 믿고 있던 바를 첨가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당연히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는 가브리엘 천사와 마리아의 대화도 초기 신앙 공동체의 믿음이 반영된 이야기입니다. 사건 내용을 일일이 녹취해서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께로부터 왔음을 고백합니다. 마리아가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을 때, 천사는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신다’고 답합니다. 이 말은 성령이 내려오셔서 창조가 시작되었다는 창세기(1,2)에 관련됩니다. 성령이 오셔서 세상이 창조되었듯이, 성령이 새로운 생명 하나를 마리아 안에 창조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는 인간의 힘이 불가능한 곳에 하느님이 은혜롭게 베푸신 생명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이 마리아를 처녀라고 말할 때, 그것을 산부인과적 의학 진술로 알아듣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은 의학정보를 전하지 않고, 믿음을 전합니다.

공동체가 전한 이 믿음은, 우리가 자기애에 빠져서 하느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고, 내가 세상의 주인인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내가 이룬 것에 도취되어서는 안 되고, 나의 부족함에 좌절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이루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우리가 기다리고 경축하는 성탄의 신비는 어떤 상황에서도 구원을 이루시는 하느님의 크신 손길을 증언합니다. 그 신비 앞에서 우리 신앙인들이 드릴 것은 오직 감사와 신뢰뿐입니다.


박용욱 미카엘 신부
대구대교구 사목연구소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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