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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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사순 제3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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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시기가 깊어집니다. 많은 경우 신앙인은 사순 시기에 단식, 희생, 자선을 행하며 지내곤 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주님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한 예수님을 본받고 묵상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순 시기야말로 예수님이 보여준 ‘사랑’을 묵상하는 시기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는 사건이며 동시에 참사랑의 의미를 알려주는 사건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살면서 보여준 사랑의 여정에서 드러난 독특한 사건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문자 그대로 보면 예수님이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화를 내며 그들을 내쫓는 이야기이며, 어찌 보면 가장 성스러운 곳에서 예수님 혼자 평지풍파를 일으킨 이야기입니다. 사랑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예수님의 모습이 어떠십니까? 시원하다, 그런 사람들은 다 쫓아내야지 이런 마음이 일어나나요? 아니면 좀 좋게 말로 하던지 다른 방법을 찾으시지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나요? 만약 현장에 예수님과 함께 있다고 상상해 보면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드실 것 같나요?

예수님이 상인들과 환전상들을 예루살렘 성전에서 쫓아내는 이야기는 ‘성전 정화’ 사건이라고 불리며 네 복음서에 다 나옵니다. 공관복음에는 예수님이 최후 만찬 전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벌어지는 일로 묘사하는 반면 요한복음은 그보다 앞서 예루살렘에 가셨을 때 벌어진 일로 전합니다. 그러나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는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적, 정치적 중심지인 예루살렘의 가장 핵심인 성전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모든 이들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많은 학자는 이 사건을 빌미로 반대자들이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죽음에 내몰았다고 봅니다.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은 엄청 화가 나신 것으로 보입니다. 평소 예수님과 달라 보일 정도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나셨을까요? “아버지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는 말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사제들의 용인 하에 성전에서 희생동물을 판매하고 환전상을 통해 돈을 바꾸는 행위를 통해 누군가는 이익을 취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일이 모든 이를 사랑하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뤄질 수 있을까요? 어쩌면 예수님은 이 순간에 하느님이 바라시는 것은 번제물이 아니라 ‘공정과 정의’라는 예언자(아모 5,21-24, 이사 1,11-17)들의 외침을 떠올렸을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장사를 하는 행위는 돈으로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한편, 돈이 없으면 성전에서 하느님께 예배드릴 수 없는 구조라면 이 역시 돈으로 가난한 이들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만나야 하는 성전에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이런 행위야말로 하느님과 그분이 사랑하시는 이들에 대한 가장 큰 모독이라고 느끼신 것이 아닐까요?

하느님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은 이들을 모독하는 자들에 대한 ‘분노’로 드러나며, 제자들은 이를 바라보며 당황하다가 이내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떠올립니다.

예수님의 열정은 하느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열정이며, 하느님이 사랑하는 모든 이가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서로 사랑하게 하고자 하는 열정이었습니다. 그것을 가로막는 종교적, 사회적 관습과 구조에 대해 예수님은 강하게 맞섰습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의 강한 반발을 사게 되고 이로 인해 열정을 갖는 이에게는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 반대하는 사람들의 분노가 느껴집니다. 대사제들이 승인해 줬고, 바리사이들도 율법에 위반된다고 하지 않고, 아주 오래전부터 잘 해왔는데, 네가 뭔데 감히 하느님의 성스러운 장소에서 행패를 부리냐는 분노가 보입니다. 이렇게 할 자격이 있다는 표징을 보여라, 아니면 너는 죽는다는 협박이 전해집니다.

이런 강한 저항을 맞이하여 예수님은 한술 더 떠서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고 더 강하게 나가십니다. 이는 하느님의 뜻이 사라지고 가난한 이들의 존엄성이 무시되는 세상을 하느님의 뜻을 찾고 이에 맞게 서로를 사랑하는 세상으로 바뀌어 가는데 자신의 인생을,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다는 열정을 드러내는 발언이라 여겨집니다. 예수님과 같은 열정을 갖고 살지 않는다면 이 말은 그냥 무모한 이야기로 치부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에는 열정이 함께했습니다. 예수님이 걸어간 사랑의 길은 누군가의 기대에 부합하는 길이 아니고, 기존의 질서와 이해관계에 사로잡힌 길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삶은 하느님 때문에 소외된 이를 존중하고, 그들의 아픔과 함께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잘못된 질서에 대항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단지 고통의 자리가 아니라, 열정적으로 사랑의 길을 걸어갈 때 도착하는 종착점입니다. 사순 시기는 이런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내 삶에서, 우리가 함께 사는 이 세상에서, 고통받는 동료의 얼굴에서, 구조적인 악에 맞서는 사람들의 애씀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시기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만나가면서 우리는 사랑을 배웁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 사랑은 우리를 예수님이 가신 길로 초대합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사랑의 삶을 살기를 정말 원하는지 물어보게 됩니다. 말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나 혹은 우리의 이해관계와 충돌하거나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복음을 접할 경우 이를 받아들이려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의 열정을 묵상하면서 사순 시기에 예수님을 깊이 만나고 사랑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현재우 에드몬드(한국평단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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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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