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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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를 꿈꿨던 음악 신동 윤용하, 한국의 슈베르트가 되다

[백형찬의 가톨릭 예술가 이야기] (17) 윤용하 요셉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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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보리밭

라디오에서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가 흘러나온다. 세계적인 성악가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가 부르는 ‘보리수’이다. ‘겨울 나그네’는 음울하고 어둡다. 마치 회색 구름이 잔뜩 낀 겨울 날씨 같다. 그 노래를 들으면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겨울 들판을 헤매는 듯하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가슴을 파고든다. 슈베르트는 말년에 가난과 병에 시달리며 고독한 삶을 살았다. 그래서 윤용하(요셉, 尹龍河, 1922~1965)를 떠올리면 ‘슈베르트’가 생각난다. 슈베르트의 삶과 윤용하의 삶은 닮았다. 슈베르트는 말했다. “내 음악은 내 재능과 불행의 자식들이다. 내가 가장 가난하고 괴로울 때 쓴 음악을 사람들은 가장 좋아할 것이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우리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즐겨 부르는 ‘보리밭’이다. 한국인의 정서가 담뿍 담긴 명곡이다. 보리밭은 6ㆍ25 전쟁 당시 피난지였던 부산에서 탄생했다. 남포동의 한 술자리에서 윤용하는 시인 박화목에게 말했다. “박형, 발붙일 곳도 없고, 황폐해진 젊은이들의 가슴에 꿈과 희망을 줄 수 있고 훈훈하게 부를 수 있는 가곡을 만듭시다.” 박화목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틀 후 ‘옛 생각’이라는 제목의 시를 지어 윤용하에게 건넸다. 며칠 후, 다시 만난 자리에서 윤용하는 ‘보리밭’으로 제목을 바꾼 악보를 내밀었다. 가곡 ‘보리밭’은 이렇게 탄생했다.

윤용하는 우리가 친숙하게 부르는 노래들을 많이 작곡했다.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의 ‘나뭇잎배’, “도라지꽃 풀초롱꽃 홀로폈네 솔바람도 잠자는 산골짜기”의 ‘도라지꽃’,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 하루 이틀 사흘”의 ‘추억’, “밤은 고이 흐르는데 어데선가 닭소리 산매에선 달이 뜨고 먼 산슭의 부엉소리”의 ‘고독’ 그리고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의 ‘광복절 노래’ 등을 작곡했다. 윤용하 50주기 추모음악회 ‘보리밭 사잇길로’가 명동대성당에서 열렸을 때, 그의 명곡들이 공연되었다. 아카펠라로 ‘보리밭’을, 굴렁쇠아이들이 ‘나뭇잎 배’를, 가톨릭합창단이 ‘고독’을 불렀다.



음악 신동

윤용하는 어렸을 때 세례받고 성당에 다녔다. 그곳에는 풍금과 성가가 있었다. 그는 음악적 재능을 성당에서 찾았다. 어린이 성가대에서 독창했고, 성탄절이나 부활절 같은 대축일에는 성극(聖劇)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윤용하는 음악가를 꿈꾸지 않았다. 그의 꿈은 가톨릭 수사가 되는 것이었다.

윤용하의 집안은 4대째 가톨릭 집안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예수님의 아버지인 요셉의 이름을 손자에게 지어주었다. 그러면서 요셉과 같은 사람이 되려면 수사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윤용하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당에 다녔다. 윤용하 가족이 만주로 이사했을 때 봉천보통학교에 피아노가 있었다. 처음 보는 피아노가 너무 좋아 음악 시간만 손꼽아 기다렸다. 또 봉천 십간방(十間房) 성당의 성가대에서 소프라노를 맡았다. 그 성당에는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온 가톨릭 신자들이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다. 프랑스 영사 부인이 오르간을 연주하고 성가를 가르쳤다. 프랑스인 신부는 윤용하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보고 신부로 만들기 위해 동양을 방문 중이던 교황청 사절단에게 윤용하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일본 나가사키에서 라틴어와 불어를 배우고 프랑스 파리 신학교에 입학시키려 했다. 그러나 부모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윤용하는 동요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피난 시절, 길에서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온통 일본 노래였다. 그래서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나는 우리나라 작곡가들이 좀 더 동요 작곡에 힘을 기울여 주었으면 한다. 동요를 작곡하는 것이 작곡가로서 명예가 떨어지는 듯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크나큰 잘못이다.… 좋은 곡을 한 곡이라도 속히 만들어서 그들에게 주자. 우리는 하루하루 늙어가지만 그들은 하루하루 자라나고 있다.”(‘어린이와 음악’에서)

그래서 윤용하는 대한어린이음악단을 창단했다. 부산 중앙천주교회 마당에 천막을 치고 동요를 가르쳤다. 부산극장에서 발표회를 했다. 이때 발표된 동요들이 책으로 엮어지고 어린이 방송프로의 단골이 되었다. 윤용하는 작곡할 때면 책상 위에 오선지를 펴놓고, 한 손에는 펜을 들고, 휘파람 소리를 내며 악보를 그렸다. 그리고 짙은 녹색 바탕에 다섯 줄의 사선이 그려진 넥타이를 하고 다녔는데 오선지 느낌이 나서 매고 다닌 것이다. 또한, 미군용 야전 위생 가방을 어깨에 메고 다녔는데 낡은 양복과 걸을 때마다 흔들거리는 가방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가방 속에는 오선지가 가득했다. 윤용하는 그만큼 음악을 사랑했다.



가난한 옹기장의 아들

윤용하는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났다. 윤용하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波瀾萬丈)했다. 부친은 구월산 기슭에서 옹기 굽는 옹기장이었다. 그 후로 평안북도 의주로 이사 갔고, 또다시 만주 봉천으로 이사했다. 부친은 그곳에서도 옹기장수를 했으나 도저히 생계를 이을 수 없어 막벌이 노동을 했다. 그래서 윤용하는 어렸을 때부터 가난을 몸에 지니고 살았다. 윤용하의 학력은 보통학교가 전부이다.

그는 십 대에 만주 봉천 십간방 성당의 성가대를 지휘했다. 봉천방송국 관현악단 지휘자인 일본인 가네꼬가 윤용하의 음악에 대한 열정에 감동해 화성학과 대위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 후에 ‘봉천조선합창단’의 지휘자가 되었다. 윤용하는 신문에 단원 모집 공고를 냈다. 그 공고를 보고 까까머리 청년이 지원했다. 그 청년이 후에 한양대 음대 학장이 된 오현명이었다. 조선합창단은 15명 정도였다. 연습 장소는 성당이었고, 반주 악기는 오현명이 중학교 때에 취미로 연주하던 아코디언이었다. 윤용하는 ‘조선의 사계’라는 교향곡을 작곡해 조선합창단의 첫 곡으로 발표했다. 연주는 봉천방송국 관현악단이 했다.

그는 더 넓은 세계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곳이 만주국의 수도인 신경이었다. 윤용하는 그곳에서도 한인들을 규합해 합창단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찾아간 사람이 보통학교 교사였던 김대현(후에 중앙대 음대 교수)이었다. 김대현은 “우리 아기 착한 아기 소록소록 잠들라”로 시작하는 ‘자장가’를 작곡한 사람이다. 윤용하는 신경교향악단도 방문해 한인 음악가를 만났다. 그들은 ‘가고파’와 ‘목련화’를 작곡한 김동진(후에 경희대 음대 교수)과 ‘동심초’, ‘산유화’, ‘이별의 노래’를 작곡한 김성태(후에 서울대 음대 교수)였다. 그들과 함께 조선인연합합창단을 만들었다.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한인들에게 이 공연은 너무도 감격스러웠다. 왜냐하면, 한인이 쓴 곡을 한인 합창단이 노래했고, 일본인 일색의 교향악단이 연주했기 때문이었다.



깊은 신앙심 대물림

윤용하의 신앙심을 말해주는 일화가 있다. 윤용하는 ‘자식은 가톨릭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딸을 계성여중에 입학시켰다. 무척이나 기뻤다. 정말 어렵게 입학금을 마련했다. 그 돈을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다. 그런데 집을 비운 사이에 누군가가 훔쳐 갔다. 딸은 그때의 아버지 모습을 이렇게 기억했다. “귀가하신 아버지가 서랍을 열어 보시더니 침통해 하셨다. 내 입학금을 도둑맞은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도 않으셨다. 그 돈을 어떻게 다시 마련하셨는지는 몰라도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윤용하는 집에서 가사를 전혀 하지 않았다. 이사를 하거나 집안에 못질하는 것도 모두 아내가 맡아서 했다. 그러나 요한 23세 교황의 사진이 담긴 액자만은 자신의 손으로 벽에 직접 못질해서 걸었다. 그리고는 자식들에게 교황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또 자식들에게 자기 전에 꼭 무릎을 꿇고 주모경을 세 번씩 외우고 자게 했다.

<계속>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3-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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