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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꽃 소년(내 어린 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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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가스파르) 시인의 첫 자전 수필이자 그가 처음으로 전하는 어린 날의 이야기다.

박 시인을 떠올리면 노동운동가와 민주화 투사로 사형을 구형받고 감옥 독방에 갇혔던 혁명가, 독재 시절 「노동의 새벽」 등을 통해 생생한 시어로 시대와 영혼을 흔들었던 시인, 가난과 분쟁의 지구마을 아이들 곁에서 함께 울어주는 친구 등이 스쳐 간다. “무슨 힘으로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나요?” 독자들이 그에게 가장 많이 건네는 질문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그는 “모든 것은 ‘눈물꽃 소년’에서 시작됐다”고 답한다.

책에는 남도의 작은 마을 동강에서 성장해 국민학교(현 초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평이’라고 불리던 시인의 60년대 소년 시절이 담겼다. 어두웠고 가난했고 슬픔이 많았던, 그러나 다행히 자연과 인정과 시간은 충분했던 시대. 박 시인은 “그때 가난과 결여는 서로를 부르고 서로를 필요하게 했고 쓸모없는 존재는 한 명도 없었고 대지에 뿌리박은 공동체 속에서 우리 각자는 한 인간으로 강인했다”고 회고한다.

세상이 하루하루 독해지고 사나워지고, 노골적인 저속화와 천박성이 우리 영혼을 병들게 하는 지금,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깊은 물음이 울려올 때면 그는 ‘내 안의 소년’을 만난다. “결여와 상처, 고독과 눈물, 정적과 어둠이 유산이었지만, ‘내 마음에는 어둠이 없었다’”고 토로하는 그는 “이제야 내가 받은 위대한 선물이 무엇인지 실감한다”고 말한다. 시인의 일생을 관통한 근원의 힘, 비밀리에 간직해 온 기억인 어린 시절 평이가 ‘어떻게 나를 키우고 내가 되게 했는지’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다.

33편의 글마다 박 시인이 그려 넣은 연필그림이 정감을 더해 함께 평이의 시절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다. 곱고도 맛깔스러운 전라도 사투리가 글맛을 더하고, 이야기들은 다독다독 등을 쓸어주는 ‘엄니’의 손길 같다. 읽다 보면 어느덧 평이가 웃음과 눈물로 우리 마음에 뛰어 들어온다. 달리던 산과 들, 계절 따라 피고 지는 꽃의 향기, 작은 공소와 흙마당, 마을 골목 등 그를 키운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다가온다.

또 일곱 살에 아버지를 여읜 평이에게 ‘동네 한 바퀴’ 돌게 하며 씩씩하게 나아가게 한 이웃 어른들, 공소의 ‘나의 친구’ 호세 신부님, 외톨이가 되었을 때 “나랑 같이 놀래?”라며 한 편의 시(詩)로 와서 연필 깎아주던 첫사랑 소녀까지…. 순정한 흙가슴의 사람들이 살아 숨쉰다.

이 책은 오늘의 나를 만든 순간들은 무엇인지, 지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저마다 자신의 소년 소녀를 소중히 돌아보게 한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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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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