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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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희 신부의 영화 속 복음 여행] (10) 영화관을 기도와 묵상의 공간으로 만드는 영화- 클라우스 해로 감독의 "야곱 신부의 편지"

편지 한 통이 전하는 감동과 영혼의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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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곱 신부에게 온 편지를 읽어주는 레일라.
 
 
1. 고대 그리스인들은 극장에 모여 연극을 정기적으로 공연하면서 그들이 겪는 삶의 불가사의한 사건들과 경험들을 무대에 올려놓고 그것들이 자신들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삶이 주는 다양한 측면을 드라마에 담아 이렇게 저렇게 구성해보고 다시 해체시킨 다음 또 다시 재구성하는 순환과정을 통해 자신들이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을 사색하고 탐구했던 것이다.

 이러한 연극의 사색과 탐구의 전통은 영화를 오락이라기보다는 진지한 예술로 생각하는 감독들에 의해 영화를 통해서도 계속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들이 스크린에 드라마로 재현한 삶의 현실에 관객들은 자신들의 삶을 `반영`해보고 동시에 `반성`함으로써 일종의 마음 변화와 내일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이것은 마치 어둠 속에서 스크린에 비친 현실을 통해 그 어떤 깨달음의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일종의 심적 변화 체험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해 말과 금년 상반기에 우리 신앙인들에게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스크린에 비춰보고 `팔 괴고 곰곰이 생각하고 묵상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영화 3편이 동시에 개봉돼 반갑기 그지없다.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The Tree Of Life, 2011)`, `신과 인간(Des Hommes Et Des Dieux, 2010)`, `야곱 신부의 편지 (Postia Pappi Jaakobille, 2009)`다.

 이 영화들은 우리 신앙인의 신념과 신앙에 대해 묵상하게 하고, 영화관을 들어갈 때와 달리 나올 때 어떤 `심적 변화(?)`를 느끼게 해주는 영화들이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영화관이 기도와 묵상의 장소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안하고 있다. 이들 중 이번에는 `야곱 신부의 편지`에 주목해 보자.


 
▲ 텅 빈 성당에서 기도하는 야곱 신부를 애처롭다는 듯이 바라보는 레일라.
 

 2. 12년 전 종신형을 선고 받고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레일라 스텐이라는 여성, 감옥에 온 이후 그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던 그에게 어느 날 사면이 내려지고 당장 교도소를 떠날 처지가 된다.

 그러나 교도소에 온 이후로 모든 걸 포기하고 그냥 사니까 그렇게 살다가 죽으리라고 생각했던 레일라에게 갑작스레 주어진 사면은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그렇다고 유일한 혈육인 언니에게 가야 할 처지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레일라는 편지를 읽어줄 조수로 그를 요청한다는 야곱 신부를 마지못해 찾아간다. 그곳에서 그는 눈이 먼 상태로 낡은 사제관에서 사는 노사제 야곱 신부를 만나는데, 12년 동안 감옥에서 세상과 단절하며 마음이 돌처럼 굳어 있던 터라 그에게 야곱 신부는 탐탁지 않을 뿐 아니라 의심스러운 대상일 뿐이다.

 더구나 그에게 주어진 역할이라는 것이 사람들이 편지로 보낸 기도 부탁의 내용을 읽어서 야곱 신부가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때에 따라 답장을 해주는 일인데 그 일에 대해서도 그는 냉소적이다. 손자가 군에서 제대를 하는데 직장을 잡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걱정하며 손자를 위해 기도를 부탁하는 할머니의 편지에 성경 구절까지 인용하며 답장을 적게 하는 야곱 신부가 `지나치다`고 느껴진다. 사소한 편지에 집중하며 마치 대단한 소명이나 받은 듯이 말하고 행동하는 야곱 신부 모습이 그에겐 부질없게 느껴질 뿐이다.

 더구나 그간 온 편지들을 소중하게 묶어서 침대 밑에 보관하고, 편지 하나하나에 소중한 의미를 부여하며 `하느님의 아들 딸 중 누구도 쓸모없거나 잊히지 않았음을 사람들이 알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며 `편지를 가슴으로 읽는다`는 야곱 신부의 말에 다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지금까지 자신을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그로서는 냉소적 시선을 보낼 뿐이다. 그래서 그는 한 묶음의 편지를 다 읽는 것이 귀찮아서 일부를 우물에 던져버리기도 하지만 편지 내용만 들어도 그가 누구인지 알아맞히는 야곱 신부를 보면서, 또한 아무런 욕심 없이 자기가 지닌 모든 것을 다 내어주면서까지 그들을 돕는 야곱 신부의 마음에 차츰 공감의 시선을 보낸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편지가 오지 않는다. 편지가 여러 날 동안 오지 않자 지금까지 평온함으로 편지를 통해 부탁하는 기도에 충실하며 행복해 했던 야곱 신부가 자제력을 잃기 시작해 급기야는 정신적으로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다. 한참 걸어가야 되는 성당에 가서 있지도 않은 혼인예식을 준비하다가, 세례식으로 착각하기도 하고 마침내 제정신이 들어 "누가 늙고 앞을 못 보는 그런 신부를 필요로 하겠습니까? 아무도 없겠죠" 하며 자괴감에 빠진다.

 하지만 절망의 깊은 나락까지 빠졌던 야곱 신부는 성당에서 성찬식을 거행하고 난 후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다시 사제관으로 돌아와 평온을 되찾는다. 그 새로운 깨달음에 대해 그는 레일라에게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난 이 일을 하느님을 위해 하는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반대였나 봐요. 나 자신을 위한 일이었나 봅니다. 나를 지탱하게 하려는 주님의 방법이었죠. 나를 집으로 이끄는 방법이요." 무엇인가 할 수 있었던 것, 그것이 희생이든 기도든 그것은 먼저 누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바로 길을 잃지 않고 당신의 집으로 이끌기 위한 하느님의 섭리였다는 야곱 신부의 고백에 레일라의 표정이 변한다.

 결국 레일라도 편지를 기다렸던 야곱 신부를 위해 편지형식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이 어린 시절 학대받은 이야기, 그것을 유일하게 막아줬던 언니의 이야기, 그런 언니를 괴롭히던 형부를 살해했지만 결국 언니를 불행하게 한 자신이 과연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자신의



가톨릭평화신문  2012-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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