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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희 신부의 영화 속 복음 여행] (14) 영화가 말하는 출생의 비밀- 커스트 쉐리단 감독의 "어거스트 러쉬"

정체성 회복 과정 그리며 ''하느님 자녀'' 일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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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에서 우연히 아빠를 만나 교감을 하는 에반.
 
 
1. 출생과 관련된 이야기는 TV 드라마의 단골소재이다. 시청자들은 시리즈로 계속되는 한 편의 드라마를 지켜보면서 착하고 예쁘지만 늘 구박받으며 불행하게 살던 우리의 주인공이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것으로 인해 극적으로 팔자를 고치게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속이 시원해지는 카타르시스`를 체험하며 `마음이 뿌듯해진다.`

 아쉬운 것은 TV 드라마가 지나치게 갈등과 대립의 구도로 출생 비밀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갈등과 대립 구도는 막판 뒤집기를 통한 주인공의 신분 상승과 물질적 보상이라는 의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출생의 비밀을 소재로 하더라도 대립과 갈등보다는 보다 긍정적으로 정체성을 회복하거나 새로운 관계 회복이라는 면에서 다루는 드라마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출생의 의미를 다룬 영화, `어거스트 러쉬`(August Rush, 2007)에 주목해보자.


 
▲ 거리 공연을 하는 에반.
 
 
 2. "들어봐. 들려? 음악 말이야. 난 어디서든 들을 수 있어. 바람 속에서도, 공기 속에서도, 빛 속에서도. 우리 주위에 다 있어. 우린 마음을 열기만 하면 돼.”

 영화 `어거스트 러쉬`는 이렇게 한 소년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미국 뉴욕 변두리 고아원에 사는 11살 소년, 이름은 에반 테일러이다. 그는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이들 모두가 제각기 자신만의 소중한 목소리를 가지고 자기에게 뭔가를 속삭이고 있다고 느끼는 유난히 소리에 민감한 소년이다. 문제는 그것이 단순히 소리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그 소리들이 주변의 소리들과 어울려 하나의 거대한 음악이 되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

 이처럼 주변의 모든 소리들을 자신 안에서 하나의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재능을 가진 에반은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서 떨어져 자신이 고아원에 머문 기록을 습관처럼 `11년 하고도 16일`이라며 숫자로 꼬박꼬박 헤아리며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그리워하며 눈물짓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들려오는 수많은 소리들은 음악이 되어 그에게 한 가지 비밀을 알려준다. 주변의 모든 소리들이 하나로 모여 아름다운 멜로디를 지닌 음악이 되는 그 날, 에반은 그토록 그리워하는 부모를 만나게 되리라는 것이다.

 "아마 내가 듣던 음악은 나의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왔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듣던 음들은 두 분이 만났던 밤에 들었던 음과 같을지 모른다. 그렇게 두 분은 서로를 찾았듯이 그렇게 날 찾으실지 모른다. 난 믿는다. 옛날 어느 때인가 오래 전에 두 분은 음악을 듣고 따라가셨다."
 
 이러한 믿음대로 에반은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을 모아 자신만의 리듬과 멜로디로 음악을 만들어가면서 부모를 찾아 마침내 뉴욕에 오게 된다.

 한편 에반이 태어나기 전 공연을 위해 뉴욕에 왔던 두 남녀가 있었다. 록밴드의 싱어이자 기타리스트인 루이스와 촉망 받는 첼리스트인 라일라였다. 공연 후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리드미컬한 음악에 빠져 따라왔다가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이 이뤄진다. 그들은 음악을 통해 서로 공감하며 첫눈에 반했고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이들 만남은 딸의 출세를 우선시하는 라일라 아버지에 의해 계속되지 못한다. 얼마 후 라일라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되지만 아버지는 딸의 미래를 위해 아이가 유산됐다고 거짓말을 한다. 에반의 출생은 비밀에 붙여지고 에반은 고아원에서 자라게 된다. 이 사실을 전혀 모르는 루이스와 라일라는 음악활동을 그만두고 루이스는 샌프란치스코에서 세일즈맨으로, 라일라는 시카고에서 피아노 교사로 살아간다. 서로 사랑하는데도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음악마저도 포기한 채 결코 기쁘지 않은 삶을 살아온 것이다.

 그러나 첼리스트의 길을 포기했던 라일라는 11년 후,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다가 자신의 아이가 유산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뉴욕을 향해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이를 찾겠다는 희망으로 다시 첼로 연주를 시작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즈음에 밴드 싱어로서의 삶을 포기했던 루이스마저도 기쁨 없이 지내다가 라일라를 만나러 갔던 시카고 공항에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에 이끌려 뉴욕행 비행기를 타게 된다. 바로 루이스도 운명적 사랑과 음악에의 열정을 되찾고자 뉴욕으로 오게 된 것이다.

 한편 에반은 뉴욕에서 `어거스트 러쉬`라는 이름으로 거리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줄리아드 음대에 들어가 `August`s Rhapsody(어거스트의 랩소디)`란 곡을 작곡하고 마침내 센트럴 파크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 에반에게 이 작품은 부모님을 찾기 위한 것이었고, 결국 에반이 믿었던 것처럼 음악을 통해 에반과 그의 부모인 루이스, 라일라가 같은 시간 한 장소에서 만나게 된다.



가톨릭평화신문  201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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