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피 선생의 문학 여정은 바로 ‘시’에서 싹을 틔웠고 또 마무리됐다. 그는 1930년 ‘신동아’에 시 ‘서정소곡’을 발표하며 문인으로서의 발걸음을 내디뎠다. 작품마다 그가 생전에 보여줬던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 그대로를 옮긴 듯 순수 서정성이 한껏 드러난다. 이번 호에서는 피 선생의 대표시집 「생명」을 다시 열어본다.
‘너’는 시인이 가장 사랑했던 시다. 그는 이 시를 포함해 1947년 ‘서정시집’을 낸 이후 꾸준히 써온 시작들을 한데 모아 시집 「생명」을 펴냈었다.
100여 편의 시를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이 책은 반짝이는 위트 속에서 해가 쌓일수록 더욱 맑고 투명해지는 시인의 마음을 느끼게 한다. 복잡하고 거짓된 세상의 가치는 시인에겐 헌 신문지와도 같은 것이었다. 시인은 다만 “살아있다는 것, 존재 자체가 이미 복되고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은, 순리대로 살아가며 그렇게 살아가는데 조금도 거리낌없는 데서 가능하다”고 조언한다. 나아가 이 시집은 생명과 반대되는 것으로 인식되는 죽음까지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문학관을 드러낸다.
피 선생은 생전에 “시에 대한 사랑이 내 문학 인생의 출발점”이었다며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게 된 것도, 실은 영국 시인들의 시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시는 영혼의 가장 좋은 양식이고 교육”이라며 “특히 아이들이 시를 읽으면 상상력과 감수성이 발달하고 정신세계가 성숙해진다, 이것은 마른 나무에서 꽃이 피는 것과 같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유명 작가였지만, 한결같은 수수함과 소탈한 모습으로 살아갔던 시인. 수식어 없는 진실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작품들은, 그가 생전에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이 사람, 사랑을 하고 갔구나’하고 한숨 지어주길 바란다면 욕심이지요”라고 말하며 지었던 머쓱한 표정을 깨끗이 지워준다. (한국가톨릭문인회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