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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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독설] 김영철 분도출판사 편집장

“책은 내면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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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도출판사 편집부는 서울시 중구 장충동 1가에 있다.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와 장충동 족발 골목을 끼고 50m 떨어진 곳이다.

지난 18일 분도출판사 편집부 2층에 자리 잡은 김영철(알베르토·55) 편집장의 집무실을 찾았다. 평일 오후 5시, 복잡할 것 같았던 장충동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한적했다.

원목 분위기를 살린 그의 집무실에서 출판사 특유의 중후함과 간결함이 느껴졌다. 벽면을 둘러싸고 있는 책장은 그의 손때가 묻은 책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업무에 필요한 각종 사전이 가까운 곳에 묵직하게 자리 잡았고, 「신학텍스트총서」, 「교부들의 성경 주해」를 비롯한 두툼한 원전(原典)들도 눈에 띄었다. 물론 신심서적도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신심서적을 많이 사다 꽂아 둔 건 대개 70년대 중후반입니다. 이제는 책들도 늙어서 누렇게 뜨고 밑줄 쳐 놓은 곳에는 볼펜 잉크도 번져 있습니다. 읽은 흔적을 통해 젊은 시절의 나를 다시 보면, 잡히지도 않을 걸 잡으려 안달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독일 보훔에서 철학을 공부한 김 편집장은 1998년 빅터 프랭클의 「태초에 의미가 있었다」를 번역하며 분도출판사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2000년 2월 편집차장을 거쳐 2002년부터 현재까지 편집장을 역임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신심서적을 마주해온 그에게 신심서적이란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다. 그는 “신심서적을 신심서적으로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은 저자나 출판사나 책 내용이 아니라, 그 책을 읽는 독자의 신심”이라고 말했다.

“우주의 질서나 생명의 신비를 통해 하느님의 존재와 섭리가 벼락처럼 가슴을 파고드는 체험을 한다면 물리학이나 생물학 책마저 신심서적이 될 수 있지만, 구약성경을 읽으면서도 이스라엘의 역사 정도만 눈에 들어온다면 성경조차 역사책이 되고 말겠지요.”

그는 일반서적과 신심서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을 다소 경계했다. 하지만 신심서적은 일반서적과 비교하면 본문 편집의 기교가 비교적 덜하다고 말했다. 대개 신심서적의 원고는 저자의 농밀한 신앙 체험이나 오래고 깊은 묵상과 기도의 산물인 경우가 많은데, 편집자는 이것을 독자들에게 최대한 생생하게 날것 그대로 전달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물론 기획과 편집의 묘를 능력껏 발휘하면 더 많은 시선을 끌 만한 원고도 있지만, 작업 정도가 복음 정신을 왜곡할 위험 수위에 이른다 싶으면 유혹을 뿌리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 교계 출판사 편집자들의 덕목입니다. 세상 잣대로는 어리석고 답답해 보이겠지만, 눈앞의 이익에서 잠시 눈 돌려 저 높은 곳을 보고 만든 책들이 교회의 신심서적입니다.”

그는 신심서적을 읽는 방법보다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많이 읽지 않고, 빨리 읽지 않고, 억지로 참고 읽지 않습니다. 한 번 꽂힌 책은 살면서 두고두고 읽는 편인데, 달라져 가는 내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책은 내면을 비추는 거울 같은 것입니다. 자신도 몰랐던 것을 책 속에서 발견하고 ‘아하, 이런 것이 내 안에 있었구나’ 싶으면 보통 거기에 밑줄 치지요. 이런 걸 공감이라고 합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읽는데, 속을 보여 주는 한 문장 발견하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내 인생의 책은

「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김정훈/바오로딸/1978)

대학교 3학년에서 4학년으로 이어지는 겨울을 뒤흔들어 놓았던 책. 그런 감정 두 번 다시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아버지 젊은 시절의 일기를 읽는 느낌이 들겠지만, 적어도 뭔가를 진지하게 추구하는 영혼이라면, 2045년쯤 이 책을 다시 읽었을 때 지금 우리 세대가 느끼는 짠한 마음을 함께 느낄 수 있을 듯.

「고요한 아침의 나라」(노르베르트 베버/분도출판사/2012)

그 후 35년, 내 중년의 사계를 뒤흔들어 놓았던 책. 읽느라고? 아니, 만드느라고! 1911년 2월 17일부터 6월 24일까지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노르베르트 아빠스의 한국 여행 그 129일간의 기록. 치밀한 기록 문화의 산물이다.시대가 바뀌어 그분의 역사 인식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한국을 사랑하는 그분의 마음 하나는 우리가 보기에도 애잔하기 그지없다. 요즘 관점에서 살짝 거슬리는 부분까지 가감 없이 전달함으로써 역사학적·민속학적 가치를 드높였다.

「고백록」(아우구스티누스/바오로딸/1965, 2010)

학교 공부 때문에 플라톤의 「향연」 「소크라테스의 변명」 「국가」 등을 읽던 스무 살 즈음, 나름대로 정신의 균형과 조화를 꾀한답시고 집어든 책이었다. 누군가(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하느님)에게 무한히 사랑받고 있다는 자각과 확신이야말로 구원의 근본임을 이때 어렴풋이 알게 되었지만, 아직 제대로 실천해 본 적은 없다. 원문이야 어떻든, 최민순 신부님의 번역은 예나제나 맘에 든다.
조대형 기자 (michael@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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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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