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생명/생활/문화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고전의 향기에 취하다] (7) A.J. 크로닌의 「천국의열쇠」

현실과 이상 괴리에도 오롯이 맑은 영혼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바오로딸에서 출간된 A.J. 크로닌의 대표작 「천국의 열쇠(The Keys of the Kingdom)」 표지.
이 작품은 크로닌이 쓴 소설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소설로, 1944년 미국에서 137분짜리 영화로 만들어졌다.
존 M. 스탈 감독이 제작한 이 영화는 프랜시스 치셤 신부 역에 그레고리 펙이 출연한 것을 비롯해 토마스 미첼과 필립 안 등 당시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출연했다.
 


   `발바닥 신자`라는 말이 있다. 주일마다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집에서 성당까지 꼬박꼬박 `발바닥` 품을 파는 신자다. 여기에 `얼굴` 잘 내밀고, 이따금 이런저런 `입놀림`까지 보탠다면 미상불 `삼위일체 신자`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나야말로 한때 본당에서 연령회 총무에다 구역장도 하고, 꾸리아 단장까지 했으니 모름지기 `삼위일체 신자`로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런 직분을 내가 직접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권유에 마지못해 했을 뿐이다. 말하자면 내키지 않는 일을 남들에게 등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맡았던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내 신앙이란 물어볼 필요도 없다. 아니, 내 경우 노골적으로 말해서 신앙의 `신`자조차 꺼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사실 언젠가 몇몇 교우들과 신부님을 모시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 나 자신 `나일론 신자`라고 진솔하게 고백했다. 그러자 신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일론 끈이 더 질기다"고 해서 모두가 한바탕 크게 웃은 적도 있다.

 그렇다. 나는 움직일 수 없는 이른바 `삼위일체 신자` 또는 `나일론 신자`이면서도 누군가가 내 종교를 물어올라치면 주저하지 않고 기꺼이 `천주교 신자`라고 답변해 왔다. 어디 그뿐인가. 누군가와 식사를 하게 되면, 설령 상대가 초면일지라도 그 앞에서 예외 없이 성호를 기똥차게 긋고 식사 전 기도를 바쳐 당당하게 천주교 신자임을 드러냈다.

 별 신심도 없으면서 나는 이렇듯 뻔뻔하게 신자 행세를 하고 있다. 스스로 생각해도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언제쯤 신자다운 신자로 거듭날 수 있을까. 신심이 풀풀 넘쳐나는 교우들을 볼 때마다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지만, 아무리 몸부림쳐도 내가 가야 할 길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어쩌면 끝까지 `나일론 신자`로 살다가 `나일론 신자`로 죽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제껏 살아온 별 볼일 없는 신앙생활로 미루어 짐작컨대 그럴 확률이 매우 높다.

 더욱이 세상살이가 힘들 때마다 나는 하느님을 적잖이 원망했다. 유년 시절 이후 죽자 사자 고난의 가시밭길을 헤쳐왔건만, 그리하여 이제는 그 무거운 멍에를 벗겨주실 때도 됐건만 하느님께서는 왜 이토록 가혹한 고난을 안겨주는 것일까. 하느님에 대한 회의까지는 아니지만, 인간사가 고르지 못하다고 느낄 때마다 곧잘 하느님 탓으로 돌리곤 했다.

 불공평한 사회, 대립과 반목이 극과 극을 달리는 사회, 노력에 비해 대가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 물질이 인성까지 오염시키는 부조리한 사회, 인간이 기술과 자본의 노예로 전락한 시대, 온갖 범죄와 전쟁이 끊이지 않는 인간사회…. 그런 현실을 돌아볼 때 과연 하느님께서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신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A.J. 크로닌의 장편소설 「천국의 열쇠」를 읽으며 참으로 많은 것을 느꼈다. 크로닌은 1896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천주교 신자였고, 모친은 개신교 신자였다. 그는 어린 시절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 친척집에서 외롭게 성장했다. 그는 청소년 시절, 유머와 사랑이 넘치는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25년 글래스고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에 앞서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군의관으로 종군했으며, 종전 후에는 남(南)웨일즈와 런던에서 개업해 전문의로 활약했다. 그러다가 과로를 못 이겨 의업을 포기하는 대신 요양 중에 작가수업에 몰두, 1931년 「모자장수의 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941년 크로닌은 불후의 명작 「천국의 열쇠」를 발표했다.   

 
▲ 캐나다 중부 마니토바 주 수도인 위니펙 성 마리아대성당에 유리화로 묘사된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의 소명을 마치고 천국에 들어서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올들어 주님 승천 대축일을 한달 남짓 앞두고 지난 4월 말 공개됐다.
【위니펙(캐나다)=CNS】
 


 작품은 주인공 프랜시스 치점 신부의 회고담으로 시작한다. 고아로 자라난 치점은 신학생 시절부터 해맑은 영혼을 지키며 성실성과 인간의 양심을 바탕으로 높은 이상을 추구한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냉엄한 현실은 도리어 그의 성실성과 양심을 배척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치점은 자기 소신을 더욱 굳게 다진다.

 반면 어린 시절 친구이자 동급생인 안셀모 밀리는 철저히 현실적으로 살아간다. 그는 신학교에서 반장 노릇도 하고, 선배 성직자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승승장구하다가 나중에는 주교직에까지 오른다. 말하자면 절친한 친구 치점과는 정반대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한편 교회는 보수적 중진 성직자들과 심심찮게 갈등을 빚어온 치점 신부를 중국 선교사로 보낸다. 두말할 나위 없이 중국은 그 나라 특유의 문명과 도덕률로 말미암아 천주교 신부가 활동하기 어려운 지역이다. 하지만 치점은 중국이 낳은 공자의 가르침까지 흡수하며 자기 나름대로 독특한 신앙을 확립해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그는 흑사병과 싸우고 물난리를 겪는 등 온갖 어려움과 마주친다. 여



가톨릭평화신문  2009-08-16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19

시편 94장 14절
정녕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물리치지 않으시고, 당신 소유를 저버리지 않으시도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