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여성 가톨릭 신자들은 서구 여성 신자들보다 성차별적 교회 언어에 민감하며, 성과 임신에 관한 여성의 자유에 관심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예수님과 여성을 공부하는 가톨릭 신자들의 모임’(이하 예여공)에서 한국 여성 신자 일부를 대상으로 11월에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나왔다.
호주 뉴캐슬 대학교 연구진은 지난해 3~4월 CWS(Catholic Women Speak)의 의뢰를 받아 ‘가톨릭 여성 국제 설문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를 위해 진행한 대규모 국제조사로 104개국 가톨릭 여성 신자 1만7200명이 가톨릭신자로서의 정체성, 교회 개혁에 대한 견해, 여성 관련 이슈 등에 응답했다.
예여공은 한국 여성 신자들의 경험과 통찰을 모으고, 국제조사 결과와 비교하고자 설문을 번역해 11월 조사를 진행했다. 유효 응답은 149명이다. 국제조사는 56~70세(30.7)가 응답률이 높으나 예여공 조사는 41~55세(38.2)의 응답이 가장 많아 상대적으로 젊은 신자층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설문에 참여한 한국 여성 신자 94는 ‘가톨릭 신자라는 정체성이 내게 중요하다’고 답했다. 현재 교회와의 관계에 대한 개방형 응답을 분석하면, 하느님 존재에 대한 믿음은 확고하지만 제도 교회에 대한 믿음은 약한 것으로 드러난다. 교회와의 관계를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밧줄’, ‘높은 벽’ 등으로 표현했고, ‘하느님 말씀을 따르는데 방해가 되는 한국 교회’, ‘여전히 교회 안에 존재하는 여성 차별’ 등을 지적했다.
전체 응답자 중 87.2가 ‘가톨릭교회의 개혁을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가톨릭교회의 개혁 과제는 ▲여성 관련 ▲교회 지도자 관련 ▲성과 가정 ▲사회적 과제로 나뉜다. 여성 관련해서는 ‘모든 단계에서 여성이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 전체 응답자 중 86.6가 동의했고, ‘전례와 교회 문서에 사용되는 언어는 성차별적이지 않아야 한다’에 95.3가 동의했다. 서구 여성들보다 두 과제에 높은 지지도를 보였다.
개방형 응답에서는 ‘여성에게 하대하는 사제와 남성 평신도 지도자들의 언어’, ‘성 역할 구분과 남녀 간 위계질서가 있는 교회 문화’에 불편함을 드러냈다. 성직주의가 교회를 해친다는 의견은 63.8다. 국제조사보다 성직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 비율이 낮다.
‘성과 가정’ 관련해서는 ‘성과 임신에 관해 여성의 자유가 존중돼야 한다’에 94가 동의했다. 국제조사보다 20나 높아 눈길을 끈다. 예여공 모임에서 조사 결과를 발표한 우리신학연구소 이미영(발비나) 소장은 “이는 한국사회의 낙태죄 폐지 움직임과 관련한 여성들의 의식이 엿보이는 부분”이라고 분석했다.
이 소장은 “여성들이 교회 언어에 민감하다는 점과 연계해, 교회의 성·생명윤리 전달 방식이 여성들의 변화된 의식에 반감을 일으키는 형태로 전달되지 않도록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사회적 과제로 ‘기후변화는 교회 전체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라는 점에 95.3가 동의했다. 사회정의 활동 근거로 사회교리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응답도 93.3로 모두 국제조사보다 동의도가 높았다. 기후위기 시대 속 창조질서 회복, 가난한 이들을 향한 우선적 선택으로 향하는 여성 신자들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소장은 “우리 사회에 여성의 인권과 성평등 관련 과제가 많고 이를 개선하려 노력하고 있는데, 여성의 존엄을 위한 교회의 노력이 사회의 노력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을 확인하면 여성 신자들은 낙심하게 된다”고 했다. 이 소장은 설문 결과에 나타난 여성들 목소리를 토대로 “여성 이슈를 젠더 이데올로기로 치부하지 않고, 평등한 교회 문화를 고민하는 변화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교회 공동체”가 되길 희망했다.
염지유 기자 gu@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