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보니 무덤에서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루카 24,2)
짙은 어둠을 뚫고 빛이신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예수님 부활의 기쁨을 의정부교구 모든 형제자매들과 나누며, 부활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예수님의 부활이 힘겹게 세상을 살며 삶에 지치고 희망을 잃은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 각자가 전하는 부활의 기쁜 소식이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을 통해 이웃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빈 무덤을 가로막았던 큰 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보여준 첫 증거는 빈 무덤이었습니다. 새벽녘에 무덤을 찾은 여인들이 보니 “무덤에서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습니다.
부활의 기쁜 소식은 예수님께서 돌을 치우고 무덤에서 나오신 것을 목격한 사람들로부터 전해졌습니다. 무덤을 막았던 큰 돌은 죽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제 그 돌이 옆으로 굴려져 치워진 것입니다.
죽음과 부활을 가르고 주님과 우리를 막아선 큰 돌은 우리 자신과 이 세상이 안고 있는 죄와 같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불평등이 심해졌습니다. 소수의 부가 다수의 가난을 양산하는 경제적 불평등은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불평등으로 소외되는 가난한 이들을 향한 관심은 점차 줄어드는 듯 보입니다.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와 나라들 사이에서도 팽배해지는 이기주의에 공동선은 설 곳을 잃은 듯한 느낌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복음의 기쁨」에서 이 같은 불의를 지적하셨습니다. 굶주리는 이들을 외면하고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배척의 경제(53-54항), 오직 경제적 이득을 최우선으로 하는 돈의 우상화(55-56항), 봉사하지 않고 지배만 하는 금융 제도(57-58항), 폭력을 묵인하는 사회 구조(59-60항), 신앙과 교회를 개인적 차원으로 축소하려는 세속화(64-67항) 등이 그러합니다. 이 모두는 ‘죽음의 문화’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처럼
이제 우리는 새로운 길로 나가야 합니다. 이 길은 예수님에게서 시작해서 예수님으로 완성되는 신앙의 여정입니다. 돌이 굴려진 무덤이 죽음이 아닌 부활의 장소가 되었듯, 죄를 걷어냄으로써 이 세상에 어둠이 아닌 빛을 드리워야 할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이야기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려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제자들이 주님과 만나면서 느꼈던 뜨거움을 루카 복음은 이렇게 전합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24,32)
두 제자는 예수님에게서 성경에 관한 말씀을 들으며 기쁨 가득하였습니다. 이는 성경 말씀에 머물고 기도 안에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남으로써 새롭게 힘을 얻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그들의 내달음이 밤길 어둠이 아닌 벅찬 희망이었듯, 우리 역시 기도와 말씀으로 힘을 얻을 때 절망이 아닌 기쁨의 여정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아울러,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가 혼자가 아닌 둘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두 제자는 스승의 죽음이라는 절망스러운 현실에서도 함께 슬픔을 나누었습니다. 비록 당시에는 알아보지 못했을지라도 예수님을 만나 걸을 때도 함께였고, 말씀을 나눌 때도 함께였으며, 빵을 나눌 때도 함께였습니다. 그리고 스승님의 부활을 깨달은 순간에도 함께였습니다.
우리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경을 묵상하고 서로 대화를 나눌 때, 주님께서는 우리와 동행해주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왔고 앞으로 계속 걸어갈 시노드 여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앞에 놓인 큰 돌, 곧 우리 자신과 주변 곳곳에 쌓인 부조리와 죄악은 깨끗이 굴려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먼저 주님께 귀를 기울이고, 언제나 이웃 형제자매들과 함께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은총의 결실은 구체적인 사랑의 나눔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의정부교구가 신앙과 사랑의 연대를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희망하며, 여러분 모두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축복을 전합니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2023년 주님 부활 대축일
+ 이기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