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 성범죄자들의 재범을 막기 위해 거주지를 제한하는 ‘한국형 제시카법’ 도입을 앞두고 이중처벌 및 위헌 가능성, 평등권 침해 등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한국법무보호복지학회가 최근 ‘한국형 제시카법 도입 시 법무보호복지의 역할과 과제’를 주제로 개최한 2023년 춘계 학술대회에서 제시카법을 도입할 경우 사회복귀를 통한 재범 예방을 방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한국법무보호복지학회는 범죄경험자 대상의 연구와 전문적인 학술활동을 목적으로 창립된 국내 유일의 재범방지 전문 학회다.
윤영석 법무법인YK 변호사는 이날 ‘성범죄 재범방지 제도’란 주제 발표를 통해 “성범죄자는 이미 형사 처벌 외에도 위치 추적 전자발찌 부착 등의 처분으로 신체적ㆍ정신적·사회적 불이익을 받고 있다”며 “제시카법은 하나의 범죄에 여러 번의 처벌을 가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범 발생을 막는다는 취지로 도입되는 여러 제도가 범죄자를 사회에서 추방하고 격리하면서, 원만하게 사회에 복귀해 정상적인 삶을 살면서 재범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흐름을 도리어 방해한다”며 “출소 후 더욱 강하게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것은 근본적 해결이라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안성훈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도 ‘한국형 제시카법의 쟁점과 한계’ 주제 발표에서 “한국형 제시카법 적용으로 나타나는 기본권 침해는 법률로 제한할 수 있는 기본권 침해의 정도를 벗어나 자유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결과가 예상된다”며 “제시카법 도입은 위헌적 성격이 매우 크다”고 밝혔다.
박진용 중앙대 교수는 제시카법이 지역 차별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는 수도권이 과밀화돼 인구 밀집 지역의 거주를 제한하면 잠재적 범죄 위험이 다른 지역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며 “성범죄자의 거주 제한이 지역 간 평등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고, 결국 다른 지역 주민의 기본권 침해로도 연결될 수 있다”고 질타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한국형 제시카법 도입에 신중한 입장이다.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장 현대일 신부는 “출소해서 형기를 마쳤는데, 다시 거주를 제한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나게 된다”며 “다만 처벌단계에서 범죄자들에게 더 제한을 두는 방안을 찾는 게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서울의 경우 아동시설과 학교 반경 500m 밖으로 거주를 제한하면 달동네 말고는 전과자들이 살 곳이 없다”며 “직접적인 거주 제한보다 전자발찌 부착자에 대한 감시 인력과 예산을 늘리고, 접근금지 준수사항을 강화하는 등 제3의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시행 중인 제시카법은 12세 미만 아동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주거지를 학교나 공원 등으로부터 610m 내에선 살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법이다. 2005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아동 성폭행 전과자에 의해 강간 후 살해된 9살 소녀 제시카의 이름을 붙여 제정했다.
지난해 10월 과거 수원 일대에서 범행을 저질렀던 성범죄자 박병화가 15년 수감 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후 거주지를 놓고 논란이 이어지자, 법무부는 지난 1월 ‘2023년 법무부 5대 핵심 추진과제’ 보고를 통해 출소자 거주제한 등이 담긴 전자장치부착법 개정안(일명 제시카법) 제정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