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콘솔레이션홀에서 ‘2022년도 인권 주일 장엄미사’
▲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콘솔레이션홀에서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주례로 인권 주일 장엄미사가 거행되고 있다. 서소문성지 제공 |
대림 제2주일이자 41번째 인권 주일인 4일 서울대교구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콘솔레이션홀에서 ‘2022년도 인권 주일 장엄미사’가 봉헌됐다. 이날 미사는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가 주례하고, 교구 사제단이 공동집전했다.
주교회의는 1982년부터 대림 제2주일을 인권 주일로 정해 담화를 발표하고, 2011년부터는 인권 주일부터 시작되는 대림 제2주간을 ‘사회 교리 주간’으로 지내고 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지어진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에 대한 존중, 사회에서 박해받고 외면당하는 이들에 대한 보호ㆍ인권 신장과 더불어 세상 곳곳에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미사가 거행된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는 조선의 국가 공식 처형장이자 단일 장소로는 가장 많은 순교성인과 복자가 탄생한 한국 천주교 최대 순교성지다.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순교자 중 성인은 44명, 복자는 27명, 하느님의 종 5명이다. 2014년 8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소문 성지 내 순교자현양탑을 찾아 기도한 뒤, 광화문에서 124위 복자 시복 미사를 거행했다. 조선 관청이 모여있던 광화문 일대부터 처형장인 서소문 밖 네거리까지, 순교자들이 끌려와 죽임당한 길을 거슬러 올라가 죄인으로 삶을 마친 그들의 신원을 복원하는 의미의 행보였다.
공권력이 사람 목숨보다 중하던 시절, 신앙을 지키다 죽음에 이른 순교자를 포함해 서소문에서는 조선왕조에 반(反)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이들이 처형당했다. 죄명이 무엇이었든 모든 삶은 존귀하고 누구도 죽어 마땅한 생명은 없다. 미사가 봉헌된 콘솔레이션 홀(Consolation Hall)은 바로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모든 이들을 위로하고자 헌정된 공간이다.
역사 속 인권유린 현장이었던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콘솔레이션홀에서 인권 주일에 거행된 이번 미사는 ‘복음이 인간과 공동체를 위해 제시하는 여러 가치가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촉구하고,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보완하는 가운데 더욱 나은 공동선의 실현과 연대를 수호하려는 교회의 가르침을 대변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한편, 이날 인권 주일 미사 후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에 위치한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는 2022년 하반기 특별기획전 ‘인공윤리(人工倫理)-인간의 길에 다시 서다’가 개막했다.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인공지능 시대에 떠오르는 인권 문제를 ‘인공윤리’라는 화두로 풀어낸 전시다. 인간이 만들어 온 윤리 규범이 공동체를 올곧게 견인하고 있는지를 성찰한다.
정순택 대주교는 축사에서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기술 발전으로 인해 ‘익숙해진 편안함’ 안에 지내면서도, 오히려 마음 한구석은 늘 불안하고 초조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듯싶다”며 “급변하는 외부세계로 쏠리는 관심으로 말미암아 안정되지 않은, 각자의 마음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뎌진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변해가는 시대를 살면서도 잊지 않아야 하는 고유한 가치는 바로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이라며 “인간 존엄, 그 소중함이 사회 발전의 공동 규범이 될 수 있도록 ‘인간의 길’에 우리가 모두 다시 설 수 있기를 기대해 보자”고 말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관장 원종현 신부는 “가장 낮고 약한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 시기, 한 해를 마무리하며 주님이 사랑하시는 인간과 공동체의 현주소에 대한 해답을 찾아볼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