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의 날이었던 지난 8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일반 알현을 마치고 나이지리아에서 온 두 소녀, 마리암 조셉(16)과 자나다 마르쿠스(22)를 만났다. 두 소녀는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보코하람’의 손에 가족을 잃고 슬픔에 빠진 터였다. 마리암은 7살이었던 2014년 보코하람에 납치됐고, 9년 동안 수용소에서 정신적, 신체적으로 학대당하기도 했다. 수용소에는 마리암을 포함해 3남매가 함께 갇혀있었지만, 살아서 탈출한 건 마리암 혼자뿐이다. 자나다는 지난 2018년 가족들과 밭에서 일하던 중 보코하람의 공격을 받았다. 보코하람은 자나다의 눈앞에서 그녀의 아버지를 참수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보코하람이 이들을 공격한 이유는 단 하나,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보코하람의 손에서 벗어난 두 소녀는 교황청 재단 가톨릭 사목원조 기구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트라우마 센터에서 치료를 받으며 새 삶을 찾아가고 있다. 두 소녀와 교황의 만남 역시 ACN 이탈리아지부에서 주선했다. 교황은 이날 두 소녀를 위로하고 축복했다.
아프리카 최대 그리스도교 국가인 나이지리아의 종교 자유가 갈수록 위태로워지고 있다. ACN에 따르면, 2022년 나이지리아에서만 5014명의 그리스도교인(개신교 포함)이 목숨을 잃었다. 전 세계에서 살해된 그리스도교인의 90가 나이지리아에서 나온 것이다. 성직자나 교회에 대한 공격도 비일비재하다. 지난 1월에는 사제관에서 머물던 신부가 방화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나이지리아 정치권에서도 그리스도교인들은 수세에 몰려있다. 현 나이지리아 대통령인 무함마드 부하리가 이끄는 범진보의회당이 지난 2월 25일 치른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범진보당은 보코하람의 그리스도교인 공격에 미온적으로 대처해 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여기에 범진보의회당은 승리 후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로 모두 무슬림들을 지목했다. 대통령ㆍ부통령 자리를 무슬림과 그리스도교인이 양분하던 관례를 어긴 것이다.
나이지리아의 종교 자유 악화에 전 세계가 우려를 표하고 있다. ‘ACN 세계 종교 자유 보고서’ 편집장 마르셀라 시만스키는 “나이지리아 그리스도교인이 1억 명에 달하는 등 수치로는 소수가 아니지만, 피비린내 나는 박해를 받고 있다”며 “이들은 이슬람 무장 단체의 살해 위협에 공포에 질려 고향을 떠나고 있고, 이 때문에 경제적으로 궁핍해지는 것은 물론 정치적으로도 목소리가 약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나이지리아 온도교구장 주드 아로군데드 주교는 “나이지리아는 인구나 경제적 측면 모두에서 ‘아프리카의 닻’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나이지리아가 무너지면 아프리카 전체가 무너질 것”이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