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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형제애 실천한 사도법관 정신 기린다

1일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김홍섭 판사 기림 미사’ 봉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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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섭 판사


‘한국의 사도법관’, ‘법의 속에 성의를 입은 법관’, ‘사형수들의 아버지’….

김홍섭(바오로, 1915∼1965) 판사를 향한 수식어들이다. 그는 자신이 사형선고를 내린 사형수를 직접 찾아가 용서를 청하기도 했다. “나도 주님 앞에선 죄인입니다.” 그리고 사형수의 둘도없는 후원자이자 대부가 돼줬다.

서울대교구는 1일 오전 10시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주례로 ‘김홍섭 판사 기림 미사’를 봉헌하고, 그의 모범적 덕행을 다시금 기린다. 1915년 전북 김제군 금산면 원평리에서 태어난 김홍섭 판사는 1926년 원평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40년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1945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임관했다가 1946년 판사로 자리를 옮겨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광주고등법원장, 서울고등법원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스스로 가난한 삶을 택했다. 1959년 전주지방법원장에 취임했을 당시, 허름한 작업복 차림에 고무신을 신은 채 도시락을 들고 출퇴근했다. 이에 그의 지인은 “고향 땅에 법원장으로 부임하며 외투 한 벌 없이 가서야 되겠느냐”며 옷을 선물했다. 김 판사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자신의 삶에 지장을 준다며 처가에서 보내준 쌀가마니조차 되돌려 보낼 정도였다.

김 판사는 1953년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됐다. 이후 수많은 죄수를 사랑으로 돌보며 신앙으로 이끌었다. 특히 사형수 선교에 힘썼다. 법정에서 법률에 따라 부득이 사형 선고를 내리고서도 교도소를 방문해 “직책상 사형을 선고했지만 미안하다”고 말하고, “부디 영혼을 구하라”고 권면한 뒤 교리책을 주며 신앙생활을 권했다. 매달 급여의 절반을 사형수들을 위해 썼다.

그는 1964년 재속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했다. 수도회 입회는 그의 오랜 소망이기도 했다. 재속 프란치스코회원으로 사는 동안 프란치스칸 정신인 가난과 형제애를 실천했다. 또 전주 치명자산 유중철(요한)·이순이(루갈다) 동정부부 순교자 묘를 날마다 참배하고, 순교기념비를 세우는 등 모든 삶을 신앙 안에 뒀다.

서울대교구는 ‘기억하다·빛과 소금이 된 이들’이란 주제로 기림 미사를 봉헌해오고 있다. 한국 근현대사에 빛나는 신앙 선조들을 기리고, 그들의 삶을 신앙의 모범으로 삼아 실천하자는 취지다. 지난해 3월 첫 미사로 안중근 토마스(1879~1910) 의사를, 11월 두 번째 미사 때엔 선우경식 요셉 원장(1945~2008)을 기리는 미사가 봉헌됐다. 매년 상ㆍ하반기 두 차례씩 봉헌할 예정이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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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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