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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법관'' 김홍섭 판사 기림미사 내일 봉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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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법에 인간의 숨결을 불어 넣으려 노력한 '사도 법관'. 

고(故) 김홍섭 판사의 기림미사가 내일 오전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됩니다. 

‘사형수들의 아버지’, ‘법의 속에 성의를 입은 법관’ 등 많은 별명을 갖고 있는 김홍섭 판사. 

김홍섭 판사의 삶과 신앙을 이힘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판사는 타인의 죄를 판단해야 하는 숙명을 지닌 숭고한 직업입니다.

판사의 판결에 따라 죄인은 형량을 선고받고, 때로 죄가 없는 이는 풀려나기도 합니다.

판사에겐 법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함께 냉철한 판단력이 요구됩니다.

고 김홍섭 판사는 한 가지를 더 갖고 있었습니다.

‘바오로’라는 세례명을 가진 신앙인 김홍섭은 법관이기 전에 한 사람의 친절한 이웃이 되고자 했습니다.

남의 죄를 판결하기에 앞서 자신의 죄부터 돌아보곤 했습니다. 

1915년 일제강점기 전북 김제에서 출생한 김홍섭 판사는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지독한 가난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법관이 되겠다는 굳은 결심과 노력 덕분에 친구와 함께 도쿄 유학을 다녀온 뒤 1940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게 됩니다. 

1945년엔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임관한 그는 이듬해 판사로 자리를 옮긴 뒤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광주고등법원장, 서울고등법원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1948년엔 정부수립과 함께 서울지방법원 소년부 지원장으로 발령받게 됩니다. 

가정과 사회에서 보호되지 않는 소년들을 어떻게 구김 없이 길러낼지 고민한 김홍섭 판사. 

그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죄 지은 아이들을 재판할 때에도 친부모처럼 어르고 타이르며 눈물을 흘리며 인생의 조언을 아끼지 않은 김홍섭 판사.
 
그의 눈에 소년범들은 범죄자가 아니라 다시 일어서야 할 대한민국의 희망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를 따라다니던 영원에 대한 갈망은 6.25전쟁을 계기로 가톨릭 신앙인이 됩니다.

1953년 세례를 받은 김 판사는 준주성범을 읽으며 신심을 다녀갔습니다. 

이때부터 신앙인의 눈빛으로 법관의 직무를 다시 바라본 김홍섭은 정의와 단죄를 위한 법이 아닌 용서와 사랑을 위한 법을 이뤄나가기 시작합니다.

신앙인 김홍섭은 죄수를 사랑으로 이끌었습니다.

[VCR] "재판을 하고 저녁 때 돌아오셨는데 (밥을) 한 수저 이렇게 자시고 그 다음에 가만히 앉아서 눈물이 글썽 글썽하시길래 ‘왜 그러십니까?’ ‘오늘 부역자 재판을 했는데 그 뒤에 방청석에 와서 앉아 있는 아내하고 자식들, 다섯 살, 여섯 살, 일곱 살 이런 애들이 졸졸이 나와 있는데 얘들을 보니까 앞이 캄캄해져요’ 그러면서 저녁을 못 자시는 거야."

김홍섭 판사는 사형수 선교에 특별히 힘을 쏟았습니다. 

1964년엔 재속 프란치스코회에 입회, 프란치스칸 정신인 가난과 형제애를 몸소 실천했습니다. 

작은 성당의 종지기가 되고 싶어했던 김홍섭 판사는 세상을 위한 종지기 역할을 하다 1965년 50세로 선종했습니다.

김홍섭 판사의 기림미사는 4월 1일 오전 10시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주례로 봉헌된니다.

한편 서울대교구는 2022년부터 ‘기억하다?빛과 소금이 된 이들’을 주제로 상반기와 하반기에 기림미사를 봉헌해왔습니다. 

지난해 3월 26일 첫 미사는 안중근 의사, 11월 12일엔 선우경식 원장의 기림미사를 봉헌했습니다. 


CPBC 이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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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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