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문희종 주교는 제13회 생명 주일(5월 7일)을 맞아 담화를 발표하고 “의도적으로 자신이나 타인의 생명을 중단하는 안락사는 윤리적으로 결코 허용될 수 없다”며 조력 존엄사법에 대해 반대의 뜻을 강력히 표명했다.
문 주교는 ‘생애 말기의 윤리적 도전과 생명의 의미’라는 제목의 담화에서 2022년 6월 국회에서 발의된 ‘조력 존엄사법’에 대한 우려를 거듭 밝혔다. 조력 존엄사법은 말기 환자이며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겪고 있는 이에게 조력 자살을 허용하는 법안이다. 조력 자살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로 안락사에 해당한다.
문 주교는 “조력 자살을 법제화하려는 시도는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생애 말기가 무의미하며 죽음조차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에 불과하다”며 “의학의 발전으로 점점 더 고통에서 자유로워지고 있지만, 고통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종교적인 시각은 그만큼 잃어가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특히 “노인의 극단적 선택이나 고독사 또한 이러한 문화를 보여주는 현상”이라며 “노인을 그저 사회가 짊어져야 할 짐으로 여기는 ‘버리는 문화’가 퍼져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이미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2배를 웃돌고 있고,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OECD 평균의 2.7배 수준에 달한다.
이에 문 주교는 “생명은 근본적 가치”라며 “생명이 없다면 인간의 다양한 활동은 물론 사회 공존도 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또 “이러한 까닭에 모든 국가는 국민의 생명 보호를 가장 기본적인 원칙으로 삼고, 생명을 침해하는 범죄를 엄중하게 처벌하고 있다”며 “이는 자신의 생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며, 안락사나 조력 자살의 법제화는 이 같은 생명 보호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 주교는 인간의 생명을 ‘하느님의 선물’이라 전하면서 “선물은 사랑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자 선물을 통해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생명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볼 수 있으며, 매 순간 주어지는 생명의 선물을 받으며 하느님과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의미다.
가톨릭교회는 “때때로 죽여 달라는 중환자들의 간청이 안락사에 대한 진정한 원의의 표현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사실 그것은 거의 언제나 도움과 사랑을 구하는 고뇌에 찬 간원”(안락사에 관한 선언 「가치와 권리」, Ⅱ)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문 주교는 “고통을 겪는 생명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 무엇보다 더 많은 관심과 돌봄을 받아야 한다는 소중한 생명”이라면서 “누구도 안락사를 선택해야 할 만큼 고통을 겪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호스피스 및 완화 의료 시설의 확대와 환자를 돌보는 이들에 대한 사회·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명 보호를 위한 모두의 협력을 거듭 요청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