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마리애, 한국 가톨릭 교세 확장에 핵심 역할"
[앵커] 성모성월하면 가톨릭교회의 대표적인 평신도 사도직 단체 레지오마리애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죠.
이달 말이면 우리나라에 레지오마리애가 도입된 지 70주년을 맞습니다.
한국 교회 영성의 한 축은 레지오마리애 영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한국 레지오마리애의 도입과 의미에 대해 김현정 기자가 살펴봅니다.
[기자] 레지오마리애는 한국 천주교의 평신도사도직 단체 중 가장 큰 단체입니다.
레지오마리애는 6.25전쟁 중이던 1953년 5월 31일 광주대교구장 현 하롤드 대주교의 지도로 도입됐습니다.
목포 산정동본당에 ‘치명자의 모후’와 ‘평화의 모후’ 경동본당의 ‘죄인의 의탁’ 쁘레시디움으로 시작됐습니다.
단원들의 활동은 목포를 중심으로 광주대교구 거의 전 지역에 걸쳐 전개됐습니다.
주로 가정 방문을 통한 입교 권면과 공소 교리 지도, 냉담교우 방문, 혼인 장애 해소 권면, 환자 방문 등 다양한 활동을 수행했습니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시작한 한국 레지오마리애의 확장세는 빨랐습니다.
도입 5년만에 국가평의회인 한국 중재자이신 마리아 세나뚜스를 승인 받아 전국적인 조직을 완료했을 정도였습니다.
이후에도 레지오마리애는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고, 교세의 확장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박준양 신부 /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 영적 지도>
“(한국 레지오마리애는) 가톨릭 교회의 조직적인 발판이 마련이 되었고. 이제 그것이 계속해서 각 교구로 퍼져나가면서 굉장히 큰 역할을 하게 된 게 사실이고 이제 그것이 또 한국 교회에서 이제 한때는 ‘가톨릭 신자가 된다’라는 것은 ‘레지오 단원이 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는 레지오마리애 평의회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90년 초반까지만 해도 레지오마리애의 단원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20만명에 육박했고, 코로나19 이전까지도 확장세는 계속됐습니다.
그러다 코로나19로 단원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2021년까지만 해도 21만 1169명이던 행동단원이 지난해 말 기준 16만 9513명으로 20나 줄었습니다.
여기에 고령화 문제도 맞물려 있습니다.
젊은 단원의 유입이 거의 없어 앞으로도 단원 감소는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지역으로 갈수록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한국 최초의 레지오마리애 쁘레시디움인 목포 산정동본당 평화의 모후와 치명자의 모후 쁘레시디움도 단원들 평균 연령이 70세가 넘습니다.
<구양순 라파엘라 / 목포 산정동 본당 '평화의 모후 Pr.' 단장>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들어와야 하는데, 이 레지오(마리애) 활동을 하다 보니까 기도 생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주회 하면서 보고를 하잖아요. 내가 활동했던 거 기도회 생활했던 거. 그러니까 지금 젊은 사람들은 또 바쁘고 직장생활하고 그래서 이 레지오(마리에 활동)에 대해서 겁나게 좀 부담을 갖는 것 같아요.”
고희를 맞는 한국 레지오마리애는 축하와 함께 돌파구가 절실한 시점입니다.
<박준양 신부 /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 영적 지도>
“군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굉장히 뛰어나고 훌륭한 군인이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런 의미에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입각한 그리고 시대의 표징을 읽으면서 오늘날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그런 기도와 봉사를 할 수 있는 쪽으로 이렇게 발전해야 하는 것이 현재의 큰 과제이고 또 우리의 어떤 목표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청일 안젤로 / 광주 중재자이신 마리아 세나뚜스 단장>
“지금 저희들 이번 대회 명칭이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회복’이거든요. 우리가 성모님의 신심을 회복하고 처음에 정신으로 돌아가면 지금 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가 있다고…”
CPBC 김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