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토로의 아빠로 유명한 지브리 스튜디오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에는 전쟁을 배경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많다. 세계 최초이자 마지막이길 바라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일본에서 전쟁과 평화를 다루는 방식을 생각해보게 한다. 단절됐던 한일관계가 재개되며 풀지 못한 한일문제를 다시금 묵상하게 되는 시점에 이번 평화순례를 참여하게 됐다.
첫째 날 후쿠오카에 도착해 다이묘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시모노세키로 이동했다. 시모노세키는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일본의 항구도시다. 조선인들은 부관(부산-시모노세키) 연락선을 통해 이곳으로 강제 징용되어 선착장의 컨테이너 창고에 갇혀 지내다가 간몬(혼슈-큐수) 연락선으로 일본 곳곳의 탄광으로 보내졌다. 시모노세키는 현재 항구 관광지가 되어 가라토 시장과 유원지 등 유명한 명소가 자리 잡았다. 이제는 전쟁으로 고통받은 이들이 잊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해방 이후 조선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지낸 ‘똥굴마을’도 둘러봤다. 이곳은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갈 준비하는 조선인들이 살았던 마을로, 일본인들이 기피하는 지역이다. 조선인들은 생계조차 어려워 조국으로 돌아갈 여비를 마련하지 못해 이곳에 모여 살게 되었다. 비가 많이 내리는 마을에 텅 빈 슬픔이 묻어나는 듯했다.
둘째 날 방문한 시모노세키 조선학교는 해방 이후 남북으로 갈라지기 전, 일본에서 태어나 조선 국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학교였다. 조선학교는 우리말과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1946년부터 일본 전역에 설립되었다. 북한은 아직도 조선학교를 금전적으로 후원하고 있다고 한다. 해방 이후에도 조선학교는 일본 사회에서 테러와 차별을 받았다. 2010년 일본은 고교 무상화 정책을 시행하는데, 해당 정책에 모든 외국인 학교가 포함되었으나, 유일하게 조선학교만 제외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북한의 후원이 어떤 의미일지 이념을 떠난 공감이 생겨났다. 학교를 안내해주신 교장 선생님의 부모님 고향은 경남 사천이었다. 남한에 고향이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자란 조선학교 학생들은 누구보다 한반도 통일을 기원한다. 평화와 통일 교육이 점차 사라지는 우리나라 현실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시모노세키 호소에 성당에서 예수회 작은 자매의 우애회의 한국, 일본 수녀님들과 함께 점심 미사를 봉헌하고, 쵸세이 해저탄광으로 이동했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늘어난 석탄 생산량을 버티지 못하던 해저탄광은 1942년 무너졌다. 수몰사고로 180여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그중 136명이 강제 징용 조선인이었다. 이곳에는 바닷속에 피야(큰 기둥, ピ?ヤ) 두 개가 덩그러니 남아있다. 해저 탄광에 공기를 유입하기 위한 것으로 매년 유가족들이 피야를 향해 추모한다. 드넓은 바다 한 군데 우뚝 서 있는 기둥이 유가족들에게 희망일지 절망일지 간음할 수 없는 슬픔이 느껴졌다.
셋째 날은 히로시마로 이동했다. 원자폭탄 ‘리틀 보이’가 떨어진 건물 주변으로 평화공원과 평화기념관이 있었다.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많은 일본 학생들이 보였다. 원자폭탄 덕분에 전쟁이 끝났다고 많은 사람이 주장한다. 폭력으로 만들어진 평화는 어떤 의미일까. 위력을 알 수 없는 무기를 민간인 지역에 사용한 것을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푸른 날씨와 희망이 가득한 유치원 아이들이 뛰노는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위선 같은 평화가 느껴졌다.
히로시마 평화기념성당에서 히로시마 교구 미츠루 시라하마 주교님과 함께 미사를 드리게 되었다. 주교님은 일본이 시작한 전쟁으로 고통받은 한국인들과 분단의 아픔을 미안해하셨다. 매일 저녁 9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기도에 동참하겠다고 하셨다. 전쟁의 가해자인 일본을 어떤 가톨릭적 신앙과 사회적 가치로 바라봐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 평화를 위한 연대를 제안하는 히로시마 주교님의 말에 그동안의 생각을 반성하게 되었다. 히로시마 주교좌성당에서 미사에 참여하며 어떠한 평화도 우리의 힘으로만 이루어 낼 수 없다는 하느님의 뜻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 포교를 위해 시모노세키에 상륙한 곳에 갔다. 일본의 가톨릭 신자는 전체 인구의 0.3라고 한다. 우리나라만큼이나 많은 박해 속에서 일궈낸 기적의 신앙 공동체이다. 우리와 일정을 함께한 도쿄에 사는 일본 청년 미노리에게 일본 가톨릭 공동체의 어려움을 들을 수 있었다. 일본 사회 안에서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지 못한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뜻처럼 일본에도 그리스도 향기가 퍼져 평화의 연대를 확장해 나갈 수 있길 기도하며 미노리를 응원했다.
마지막으로 하비에르 기념성당(야마구치 성당)에서 나흘간의 순례를 이끌어주신 하느님께 감사 미사를 드렸다. 하느님이 주신 자유 의지로 사람은 평화를 이룰 수 있다.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같은 폭력을 통한 평화 그리고 연대를 통한 평화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고 가신 평화를 되새겨봐야 한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에는 종전 이후 1964년부터 꺼지지 않는 ‘평화의 불꽃’이 있다. 국제사회에서 점점 꺼져가는 평화의 가치가 하느님의 자비와 우리의 연대로 다시금 불꽃처럼 타오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