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엔 그가 예수이자 부처” “나를 살린 교수.” “그냥 우직하고 착한 분” “환자밖에 모르던 사람” 심장과 대동맥 수술의 권위자인 서울아산병원 혈관흉부외과 고 주석중 교수가 지난 16일 불의의 사고로 별세하자 고인을 기억하는 이들이 그에게 붙인 말들입니다. 고인은 뛰어난 의술로 30년간 환자의 심장을 고치며 수많은 생명을 구했습니다. 살릴 가능성이 적고 어려운 수술도 도맡아서 했습니다. 더욱이 고인은 실력만 뛰어난 게 아니었습니다. 인성도 훌륭한 의사였습니다.
고인은 언제나 응급수술을 할 수 있도록 병원에서 10분 거리에서 살았습니다. 고인에게는 환자의 아픔이 자신의 아픔이었고 환자의 기쁨이 자신의 기쁨이었습니다. 고인은 “환자 상태가 좋아지니 힘이 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과로를 걱정하는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도 환자들의 건강이 좋아져 힘이 난다는 말이라고 하지요. 근사한 외식대신 병원 근처 식당에서 가족식사를 하다 응급콜을 받고 환자에게 달려가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수술을 앞두고 두려움에 떠는 환자에게는 어려운 의학용어 보다 온화한 미소로 위로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환자들 사이에서는 고인을 성경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부르던 이름인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고인의 사고소식이 들리자 고인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는 환자들의 증언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고인의 죽음이 우리에게 특별히 다가오는 것은 고인의 삶이 훌륭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요즘 의료계의 현실이 고인의 죽음에 투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많은 의사들은 어디 갔는지 의사를 찾지 못해 일명 응급실 뺑뺑이를 하다 앰블란스에서 죽음을 맞이한 환자 이야기, 똑똑한 인재들이 의대로 몰리지만 정작 생명과 직결된 필수 의료 분야에 지원의사가 없는 모습, 소아과 의사가 부족해 소아과병원에 새벽부터 줄을 서야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현실이 요즘 의료계의 모습입니다. 간호법을 둘러싼 갈등, 공공의대 설립 반대 파업, 지방 의료 붕괴, 의사정원 확대 반대, 성범죄 이력 의료인의 자격 문제 등 최근 의료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슈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영결식에서 고인과 함께한 동료 의사는 “선생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셨고 생명과 위안을 전달했다”며 “하늘에서는 응급콜에 밤에 깨는 일 없이 편안하시길 바란다”고 추도사를 읽었습니다. 이제 고인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밤중 응급콜에 잠을 깨겠지만 고인의 자리는 작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 명의 빈자리조차 크게 다가오는 필수의료를 둘러싼 의료계의 내일은 걱정입니다.
고인이 몸담았던 흉부외과는 내년부터 은퇴의사보다 신규의사가 적어져 점차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항상 긴장 상태로 있어야 하는 응급 상황과 장시간 고난도 수술이 많아 젊은 의사들이 외면한다고 합니다. 수가를 조정하고 월급을 올려도 젊은 의사들이 지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와 더불어 3대 기피분야입니다. 올해 국립대병원 10곳 중 6곳에는 소아과 전공의를 한 명도 받지 못했습니다. 대신 국내 의사 4명 중 1명은 피부 성형 진료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의료계의 현실이 안타까웠는지 고인은 8년 전 병원 소식지를 통해 후배 의사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비록 개인사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지금의 삶이 늘 고맙다. 불확실한 미래에 정답을 찾는 후배들에게 바란다. 하고 싶을 일을 해라.” 환자를 걱정하는 의사는 어떠해야 하는지 고인은 삶으로 보여주었고 미용이 아닌 생명을 살리는 의술을 펼치자며 고인은 후배 의사들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오늘 사제의 눈 제목은 <진짜 의사 주석중 교수>입니다. 우리 사회에 커다란 울림을 남기고 떠나신 고 주석중 교수가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길 바라며 오늘도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