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올해는 우리나라와 교황청이 외교 관계를 수립한 지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과 한국 천주교회가 있기까지, 역대 교황들의 외교적 노력과 도움을 잊을 수가 없는데요.
모레 교황 주일을 맞아 윤재선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기자] 우리나라가 교황청과 공식 외교 관계를 맺은 건 1963년 12월 11일입니다.
3년 뒤인 1966년, 한국과 교황청은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으며 양국 관계는 더욱더 가까워졌습니다.
1974년에는 교황청 주재 한국대사관이 설립돼 신현준 대사가 초대 교황청 상주 대사로 파견됐습니다.
교황청과 외교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건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 큰 관심을 가졌던 역대 교황들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비오 12세 교황은 정부 수립 이전인 1947년 10월, 미국 메리놀 외방전교회 패트릭 번 신부를 교황특사로 임명해 대한민국에 파견했습니다.
이는 국제 관례상 교황청이 대한민국을 주권 국가로 승인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손희송 주교 / 서울대교구 총대리>
"이미 1947년에 우리나라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이 되기 전에 1947년에 교황청에서는 한국에 나와 있는 메리놀 선교사 (패트릭) 번 신부님을 교황 특사로 임명을 해서 교황청과의 관계, 한국 천주교와 관계를 맺게 됩니다."
나아가 비오 12세 교황은 대한민국이 1948년 12월 파리 제3차 유엔총회에서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로 승인받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비오 12세 교황은 당시 교황청 국무원장 서리였던 조반니 바티스타 몬티니 몬시뇰과 파리 주재 교황청 대사인 안젤리 주세페 론칼리 대주교에게 한국 대표단을 적극 돕도록 요청합니다.
당시 유엔 대표단을 이끌었던 한국 대표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장면 요한 박사였습니다.
당시 몬티니 몬시뇰과 론칼리 대주교는 각국 대표와의 막후 교섭을 통해 장면 박사를 적극 지원했고, 신생국가였던 대한민국이 독립 국가로 인정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론칼리 대주교는 비오 12세 교황의 뒤를 이은 성 요한 23세 교황이며, 몬티니 몬시뇰은 훗날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됩니다.
<손희송 주교 / 서울대교구 총대리>
"그 후에 그분들 다 성인 됐죠. 성인 교황님이 되신 그 두 분들이 교황님의 명을 받들어서 우리를 열심히 도와줬기 때문에 오늘날 대한민국 정부가 있게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고, 또 그때 합법정부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1950년 6.25가 터졌을 때 유엔군이 파견될 수 있었다는 것이죠."
교황청은 1949년 4월 17일 대한민국을 정식 승인했으며, 교황 대사로 파견했던 패트릭 번 주교를 주한 교황 대사로 임명했습니다.
한국과 교황청 수교 60년이 주는 의미는 단지 외적인 외교 관계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거기엔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손희송 주교 / 서울대교구 총대리>
"내적으로 정말 하느님께서 교황청을 통해서, 교황님을 통해서 우리 한국 천주교에게, 천주교회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 우리가 기억하고 감사하면 좋겠습니다."
CPBC 윤재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