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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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앙의 보물]<10>교황직의 역사와 직무(상) - 신정훈 신부(가톨릭대 성신교정 교수)

시도들의 으뜸 베드로, 지상의 대리자로 세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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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평화의 사도로 기억된다. 그분의 관심과 애정에 힘입어 한국 교회는 놀라운 성장을 이뤘다. 교황직의 역사, 직무와 함께 교황직에 대한 오해에 대해 살펴보자.
 
 교황직의 역사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12사도를 뽑았다. `12`라는 숫자는 하느님이 선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한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새로운 하느님 백성을 교회 안에서 세우신다는 것이 드러난다.

 교회의 주춧돌로서 12사도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교회의 시작이 됐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선포하고 교회의 규범을 정하며 교회를 이끌었다. 사도들은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은 이들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후대에 가장 충실히 전한 증인들이다. 이들은 세상 각지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선포하며 그 가르침이 계속되도록 후계자를 세웠는데 이들이 주교다.

 교회가 세상에 퍼져 나가고 수많은 교회와 주교들이 생겨났다. 베드로의 제자인 마르코가 세운 알렉산드리아교회, 처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불렸던 안티오키아교회, 교회가 시작됐던 예루살렘교회, 그리고 사도 베드로가 활동하고 순교했던 로마교회다. 이 네 교회가 중심이 돼 세계 교회를 이끌었고 후에 안드레아 사도가 세웠다는 콘스탄티노폴리스교회가 더해져 다섯 개의 총대주교좌를 이룬다.

 주교들은 자신들의 교회를 다스렸지만, 사도단의 전통에 따라 교회 안에 문제가 있을 때 모여서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이 주교들의 회의를 `공의회`라 부른다. 그들 중에서 12사도가 세운 교회와 그 후계자들은 특별한 권위와 영예를 누렸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어떤 곳보다 충실히 전해 내려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로마교회의 위치는 특별했다. 로마교회는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 위에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12제자를 사도로 뽑으셨고 그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셨다. 그들 가운데 높고 낮음도 없었지만, 성경을 보면 베드로가 12사도 중 특별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2제자의 명단에 항상 첫 번째로 등장하는 이가 베드로이고, 첫 번째로 부르심을 받은 이도 베드로다. 예수님을 "살아 있는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이도,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때와 겟세마니 동산에도 데리고 가셨던 이도 베드로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으신 후에 당신의 양 떼를 맡기신 이도 베드로다. 베드로는 사도들의 대표격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라는 바위 위에 교회를 세우셨고 하느님 나라 열쇠를 주시며 지상의 대리자로 세웠다.

 베드로 사도는 세상 여러 곳에서 복음을 선포했지만 마지막에 로마에서 순교했다. 베드로는 당시 공동묘지였던 바티칸 언덕에 묻혔는데 박해가 끝나자 그 무덤 위에 베드로성당이 세워졌다. 그것이 오늘날 교황이 있는 바티칸시국의 토대가 됐다.
 
 베드로의 후계자 교황

 베드로의 후계자인 로마의 주교들은 그의 신앙을 이어받아 교회를 이끌고 주님의 가르침을 충실히 전했다. 다른 교회가 어려움을 겪을 때 힘이 됐고 애덕활동에도 모범이 됐다. 특히 로마의 황제가 이민족의 침입으로 로마를 떠나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간 이후에 로마의 주교는 백성에게 사목자이자 외적으로부터 백성을 구하는 보호자 역할을 했다. 서방에서 로마 주교의 위치가 중요성을 더해 갔다. 레오 대교황이나 그레고리오 대교황 등 여러 로마 주교들의 뛰어난 업적을 통해 로마 교회는 많은 지역에 복음을 선포하고 그곳에 교회를 세움으로써 어머니 교회 역할을 했다.

 교황은 라틴말로 `파파`(Papa)라고 하는데 이는 아버지, 혹은 주교를 뜻하며, 4세기 이래 로마 주교의 호칭으로 자리 잡았다.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은 사도단의 후계자인 전 세계 주교단의 으뜸으로서 공의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세에 들어 교회가 국가의 간섭을 받는 일이 많아졌다. 누가 주교가 될 것인가를 비롯해 교회 운영에 국가가 간섭했는데, 이에 맞서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은 교회 개혁으로 교회의 독립성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이렇게 국가 권력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교회는 오히려 세속을 지배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서방교회의 중심이었던 로마 교황까지도 때로는 세속 권력 다툼에 휩쓸렸다. 교황이 동시에 세 명이 나와 서로 파문했던 서방교회의 대분열 등은 교황사의 어두운 부분이다.

 교회 내적으로 보았을 때 더 가슴 아픈 일은 교회의 분열이다. 오랜 친교를 맺어왔던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1054년 서로를 파문하며 갈라졌고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을 시작으로 하나였던 서방교회마저도 개신교, 성공회, 천주교로 갈라졌다. 로마 주교인 교황은 전체 교회 신앙의 보루로서 신앙의 형제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교황직이 전 세계의 목자로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비오 6세 교황의 죽음이 계기가 됐다. 나폴레옹에 의해 프랑스로 끌려간 교황이 수모를 당하며 돌아가셨을 때 사람들은 베드로부터 전해진 교황직이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전 세계 신자들은 교황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이를 계기로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에 대한 가르침이 확립됐고 교황직은 세속의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신앙의 문제에 있어 예수님의 가르침을 더욱 뚜렷이 전하며 명실공히 세계 교회를 대표하게 됐다.

정리=백영민 기자 heelen@


 ※수요일 오전 7시 20분에 방송되며, 지난 회는 누리방(http://web.pbc.co.kr/tv)을 통해 다시 볼 수 있습니다. 



▲ 교황은 베드로의 후계자이며 로마 가톨릭교회의 수장이다. 사진은 지난해 3월 베드로 사도의 제256번째 후계자로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 【CNS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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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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