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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앙의 보물] <12>가톨릭교회교리서(상) -신정훈 신부(가톨릭대 성신교정 신부)

교리서, 신앙생활의 영원한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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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우들은 교리 하면 예비신자교리, 견진교리를 떠올린다. 그런데 교리교육은 천주교 입문 단계에만 받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 전체를 통해서 지속된다. 교리교육이 교회의 오랜 역사 안에서 어떤 모습을 지녀왔는지 살펴보자.




▲ 한국 천주교회에서 처음으로 채택한 공식 교리서 「성교 요리 문답」. 사진=「가톨릭대사전」
 
교리교육의 역사
 예수님 승천 후 사도교회에서 교리교육은 비교적 단순한 편이었다. 사도행전 15장을 보면 새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이방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예루살렘 사도회의의 결정문이 제시된다.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곧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들만 삼가면 올바로 사는 것입니다"(사도 15,28-29).
 
 사도들의 교리서로 알려진 「디다케」에서는 덕행을 따르면 생명의 길을 걷는 것이며 악행을 고집하면 죽음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가르치면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의 윤리생활을 강조했다.
 
 200년 쯤에 알렉산드리아를 비롯한 여러 곳에 교리교육학교가 설립됐다. 주교들이 직접 예비신자들의 세례를 준비시키면서 우상을 배격할 것을 가르쳤다. 313년 종교자유가 주어질 때까지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예비신자 교리는 3년이라는 긴 기간을 통해 철저히 이뤄졌다.
 세례는 부활절에 베풀어졌는데 사순절 주일은 그 준비를 마무리 짓는 기회기도 했다. 그 흔적이 아직도 우리 미사 전례 안에 남아 있다. 전례력으로 가해의 사순 3, 4, 5 주일에는 다른 주일과 달리 비교적 긴 복음을 읽는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물을 주시는 그리스도와 대화하는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 참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태생 소경의 이야기 등이다. 당시 예비신자들은 이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일 마지막 결심을 했다.
 
 로마제국에서 박해가 끝난 후 예루살렘의 치릴로나 아프리카의 아우구스티노 성인 등은 귀중한 교리서들을 저술했고 성 그레고리오 대 교황은 성인들의 기적 이야기를 통해 신앙생활의 모범을 알기 쉽게 제시하며 신앙심을 고취하는 데 큰 효과를 거두었다.
 
 교리서의 변천사
 6세기 이후 그리스도교가 크게 성장하면서 성인 입교자는 급격하게 줄고 유아세례가 급증했다. 9세기에는 유아세례를 받은 어린이들을 위한 문답교리서가 나왔다. 중세로 접어들면서 교리교육은 성인 예비신자가 아닌 유아세례를 받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에게 관련됐다. 사도신경과 주님의 기도를 외우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교 생활에 필요한 윤리생활에 대한 가르침이 교리교육의 주된 내용을 이뤘다.
 
 후에 르네상스 시기를 거쳐 종교개혁 시대를 맞이하게 되는데, 종교개혁자들의 관심사는 일반적으로 생각되듯이 무조건 가톨릭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첫째 관심사는 주관적이고 미신적인 잘못된 신심에 빠져 있던 사람들을 올바른 신앙생활로 이끄는 것이었다.
 종교개혁자들로부터 자극을 받은 가톨릭교회 역시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올바로 이끌기 위하여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여러 가지 개혁을 추진했다. 루터의 교리서 출판에 자극을 받아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신자들을 잘못된 관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교리서가 출판됐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성 베드로 카니시오의 교리서이다.
 
 첫 번째 예수회 회원 중 한 명으로 독일과 네덜란드, 스위스 등지에서 활동한 성인은 교리서를 통해 효과적으로 종교개혁에 대응했다. 특히, 1558년 발간된 소년ㆍ소녀를 위한 교리서는 성경과 교부들의 가르침을 내용으로 문답식으로 썼다. 바로 이 책이 1566년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실로 출판된 「로마 교리서」의 밑바탕이 됐다. 「로마 교리서」라고 불리는 표준 교리서는 믿을 교리와 성사 생활, 지킬 계명, 애덕 생활 등의 내용 등 1041개 항으로 구성돼 있다. 이 책은 본당 성직자들이 신자들을 교육하기 위한 방대한 규모의 교리책이었다.
 이후 신자들을 위해 문답 형식을 갖춘 「로마 교리서」의 축약본이 벨라르미노 성인에 의해 나왔고, 이것이 중국을 거쳐 선교사에 의해 조선에 들어왔다. 이 요약된 「로마 교리서」를 최양업 신부님와 다블뤼 주교가 한국말로 편찬했고, 1864년 154개의 문항으로 구성된 「성교 요리문답」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이것이 계속 사용되다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 3년 후인 1934년에 320문항의 「천주교 요리문답」이 나왔다.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났느뇨`로 시작하는 「천주교 요리문답」은 100년 동안 한국 천주교회에서 사용됐기 때문에 공의회 이전에 신앙생활을 시작한 신자들에게 매우 친숙했다. 옛날 신자는 세례를 받기 위해서 요리문답을 모두 외워야만 했고 성탄과 부활 대축일을 앞둔 판공에서 본당 신부들은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만 주는 것이 아니라 요리문답 내용을 묻고 확인했는데 이것을 `찰고`라고 하였다.
 
 1967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따라 가톨릭교리서를 발행하였는데 이로써 「천주교 요리문답」은 신자들의 일상에서 점차 사라지게 됐다.

 정리=백영민 기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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